사실 드루킹과 관련해서 처음 김경수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조금 긴장했었다. 물론 그렇게 크게는 긴장하지 않았었다. 김경수 없다고 민주당에 아예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경수 하나 정도 일찌감치 잘라내는 것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위해서도 좋을 수 있으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대통령과 민주당이 입게 될 피해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시작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야당이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심지어 청와대까지 찾아가 시위를 하고 있었다. 아예 대통령을 노리고 있다고 행동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김경수 하나가 아니다.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 당시 포털에 달린 댓글까지 의혹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당이 역공할 빌미가 생겼다.


"대선에 불복한다."


그래서 안철수가 모지리라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벌써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자신들의 성급한 속내만 노출시키는 것이다. 유권자들에 선언하는 것과 같다. 자신들은 오로지 대통령을 잡을 목적으로 이 사안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캠프에 속한 인사 하나가 불법을 저지른 정도야 그럴 수 있다.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러면 마땅히 사실을 밝히고 범법여부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 그 대상이 대통령이다. 정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지지했고 지지하고 있는 모두의 문제가 된다. 지지율라도 낮으면 모르겠는데 70%에 가까운 국민이 지지하고 있는 가운데 그런 정부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 국민들 보기에 어떻겠는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과 연관되면서 사안에 대한 대중의 관심까지 높아졌다는 것이다. 정권의 정통성과 관계되었다는데 허투루 기사를 읽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 과정에서 혼란이 커지고 모순들이 드러난다. 그래서 결국 도대체 김경수가 뭐가 문제인가 하는 말마저 나오게 된다. 뭐가 그리 심각하게 큰 문제가 있기에 온 나라가 이 난리인가. 더구나 지금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이다. 남북정상회담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별 이해하기도 복잡한 사건 하나로 야당이며 언론이며 죄다 난리 중이다. 거짓말도 길면 꼬리가 밟힌다.


결국 야당과 언론이 숨겨놓은 마지막 패만 드러났다. 검찰이 원래 그런 것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경찰마저 마지막에 본색을 드러냈다. 겨우 김경수 하나 잡으려고 숨겨놓고 있던 모든 패를 까놓은 채 정작 성급하게 대통령을 노리다가 그마저 어려운 처지고 내몰린 것이다. 이제는 야당이 장외투쟁해도 사람들이 관심조차 없다. 개헌이 물건너간 책임까지 야당에 씌워진다. 급하게 다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이 모여 개헌안을 이어가 보려 하지만 한 번 꺼진 불을 다시 지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처음부터 김경수 하나만 노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김경수 하나만이었다면 야당과 언론이 가진 모든 힘을 집중했으면 어떻게든 낙마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진정한 안크나이트다. 누구보다 빨리 강하게 문재인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사건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이건 정권차원의 문제다. 그런데 과연 정권차원의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인가. 깍두기 한 접시로 욕심부리다가 깍두기 국물까지 모두 엎어버린 상황이다.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버텨봐야 희망도 없고 기대도 없고 막막함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경찰을 기대고 언론을 기대보지만 그쪽에서도 기댈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더이상 나오는 기사들도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드루킹은 끝났고 야당의 버티기만 남았다. 멍청한 건 답이 없다. 안철수가 새삼 좋아진다.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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