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토지수용법이라는 게 있다. 공공목적을 위한 토지이용을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다. 당연히 토지수용이란 토지물권을 공공의 목적을 위해 강제로 박탈하는 공용부담의 일종이다. 한 마디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 인정되었을 때 토지소유자의 동의 없이도 공권력에 의한 강제수용이 가능하다. 물론 일정한 보상금은 토지소유자에게 지급된다.


당장 참여정부 당시 있었던 대추리 사태를 떠올려보면 된다. 미군기지의 이전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대추리에 새로운 미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추리 주민 가운데 일부가 고향을 떠날 수 없다며 보상을 거부하고 기지이전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일부가 주장하는대로 오로지 개인의 사유재산권만을 인정해야 한다면 당시 정부는 일부라도 대추리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한 순간 기지이전을 포기해야 했었다. 하지만 어떠했는가. 특히 사유재산권의 침해라며 토지공개념에 반대하는 그들 정당과 정치인, 언론들이 당시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떠올려보라.


대추리만이 아니었다. 달동네를 재개발하겠다고 주민들을 아무 대책없이 추운겨울에 내쫓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딘가 개발이 시작되었다면 보상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공권력 사이에 - 심지어 민간 용역의 뒤에 숨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사태가 심심찮게 벌어지고는 했었다. 정부도 아닌 민간업체가 시행하는 사업이라 할지라도 지자체나 정부기관이 동의했다면 주민들은 사유재산이고 뭐고 정해진 보상만 받고 강제로 내쫓겨야만 한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헌법개정안이 아니더라도 이미 현실에서 토지공개념은 때로 잔인하게 다수 국민들에게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일 것이다. 오히려 그런 때마다 많은 사회운동가, 진보인사들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반대입장을 내놓고는 했었다.


어차피 토지란 한정자산이다. 전체 양이 고정되어 있고 더이상 늘리는 것은 전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 모르겠다. 동해에서 화산이 폭발해서 울릉도와 강원도가 육지로 이어지게 될 지는. 전체 양이 고정되어 있기에 만일 필요하면 이미 있는 것 가운데서 나눠서 쓰는 수밖에 없다. 미군기지를 만들겠다고 새로 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행정수도를 짓겠다고 조각땅들을 아무데서 이어붙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덩어리로밖에 쓸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그렇다고 평창주경기장을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나눠서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땅도 좁은데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할 때 공공재적인 성격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양보와 희생을 어느 정도 전제해야만 한다.


조금 더 확장해보자. 토지의 가치가 너무 높아져서 다수 국민들이 토지를 이용하는데 불편이 생긴다. 토지가 소수의 개인들에게 독점됨에 따라 공동체에 속한 다수 개인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사용하는데 제약을 받는다. 그것은 곧 국가의 구성원인 다수 국민들의 불만과 나아가 사회의 동요로 이어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기 집 한 칸 장만할 수 없다. 널뛰는 월세값 전세값에 마음편히 몸을 누일 집 한 칸을 가질 수 없어 불편을 겪어야 한다. 제아무리 뼈빠지게 장사해봐야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면 기껏 남좋은 일이나 해주는 것 뿐이다. 그나마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으면 겨우 확보한 단골들까지 포기하고 다른 곳에서 새로 가게를 내거나 아니면 장사를 포기해야 한다. 모두가 미디어를 장식하는 현실의 사회문제들이다. 그같은 문제들이 누적되었을 때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여튼 그래서 원래부터 벌써 수십년 동안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들이라는 것이다. 달동네 보기 흉하다고 강제로 주민들을 내쫓고, 오래된 동네에 아파트 짓겠다고 동의않는 주민들까지 끌어내고, 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거부하는 주민들과 물리적 충돌까지 빚은 바 있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가진 부동산의 가치가 공권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기에 함부로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사회적으로 미미한 힘없고 약한 대상들에게는 가차없이 엄격했어도 충분한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했다. 이번 야당들의 반대도 맥락은 비슷하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다수 주민들의 반대를 힘으로 억눌렀던 그들이지만 아파트도 몇 채나 소유하고 전국에 막대한 토지를 점유한 소수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들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토지공개념은 거부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스운 것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반대인가.


그러니까 쓴 것처럼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토지수용사례들에서 나는 토지를 강제수용하려는 정부와 공권력에 대해 반대입장에 있었다. 참여정부에서도 그랬고 국민의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 자신은 토지공개념에 찬성하고 정작 같은 사건들에 대해 강제수용하려는 정부의 편에 섰던 이들이 토지공개념에 반대한다.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억울하게 자신의 거주지로부터 내쫓기고 소유한 토지마저 몰수당해야 했던 사회적 약자들까지 아우르는 공공성과 그들을 아예 안중에 두지 않는 개인의 권리의 차이인 것이다. 그들이 진정 토지공개념에 반대하는 이유인 것이다.


국가적 목적을 위해 개인이 소유한 토지도 강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 개인의 토지소유나 이용, 이익추구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적인 제약이 가해질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과도한 이익추구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그것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모두에게 지워진 의무이기도 하다. 몰라서 반대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알면서도 뻔뻔하게 무시하는 것일 게다. 하여튼 우스운 것들이다.


어차피 기존의 헌법조문에도 있는 내용이다. 단지 그 내용을 보다 명확히 구체적으로 정의함으로써 그 근거를 확실히 하자는 것 뿐이다. 그동안에도 충분히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대상은 조금 더 넓어졌을지 모르겠다. 헌법의 허점을 이용할 수 있었던 누군가들에게는 상당히 생뚱맞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반대의 이유도 이해한다. 동의하지 않을 뿐. 너무나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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