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당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과 목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대통령을 배출하여 국정을 직접 책임지기를 바라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켜 의회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당연히, 아니 오히려 소수정당이기에 정의당에게 있어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일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보의 이념과 이상을 한 번 제대로 현실로 구현해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첫째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는 약하지만 그래도 정당투표에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득표를 기록하기도 하는 정의당에게 있어 한 석이라도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한두석 정도가 아니다. 지금 정의당의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한다고 하면 지금보다 몇 배 더 많은 의석을 가지는 것도 가능해진다. 더구나 여기에 더해 정부부처의 장관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한다면 그 과정에서 늘어난 의석은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어느 정당이든 자신들이 원하는 국무총리 후보를 추천하려면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반드시 보다 의석수가 늘어난 정의당의 힘을 빌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치적인 거래가 이루어진다. 직접 정권을 가지는 것은 어렵더라도 그 과정에서 국정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연정에 준하는 정치적 연대도 가능해진다.


아마 여러해전부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늘고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정의당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차라리 이 기회에 민주당과 합당하는 것이 어떠한가. 오히려 정의당보다도 더 급진적인 인사들도 적잖이 민주당에 입당해 있으니 그들과 함께 정파를 만들어 경쟁하면 민주당의 힘으로 근사치에 가깝게 목표한 정치를 이룰 기회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이다. 혼자서는 집권이 거의 불가능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석수가 늘어도 국회과반수는 어림도 없는 목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사 민주당이 정권을 잃더라도 의회에서 연대하여 과반만 확보할 수 있으면 지금 민평당과 공동교섭단체를 이루듯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기분나쁠지 모르겠다. 기껏 대통령을 당선시켜 정권을 잡고 정당의 지지율도 높아서 의회도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괜히 정의당이 그 위에 수저를 얹으려 하고 있다. 기껏 자신들이 고생해서 이루어놓은 많은 것들을 정의당에 공짜로 빼앗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물며 그 과정에서 적이라 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과도 손잡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당연하다. 어차피 정의당과 민주당은 별개의 정당이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정강도 정책도 이념도 정치적 이상과 목표 역시 모두 다른 정당이었다. 정의당에게 민주당이란 자신들의 이념과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자 대상이지 자신들의 대신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전제했을 때 가장 현명한 영리한 이기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정의당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능성이다.


나쁘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다. 그동안 너무 고고했다. 너무 결벽하려 했다. 겨우 민주평화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꾸리며 정당으로서의 냉정한 현실인식과 판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념이나 정책과 상관없이 필요하면 손잡고 그를 위해 얼마든지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다. 정당으로서 너무 당연한 것이다. 혼자서 안되면 둘이서 한다. 둘이서도 안되면 셋이 힘을 모아 함께 한다. 그래서 정당도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은 약하지만 연대한 시민은 강하다. 정당은 연대한 시민의 단위다. 그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저앉히고 싶다면 그 또한 정당한 권리에 속한다.


아무튼 기회가 눈앞에 있으니 정의당도 무척 바빠지고 있다. 머리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다. 이번에야 말로. 하긴 정의당 소속 유력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이미 노쇠해 있다.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고 지명도 있는 주력인사들은 이제 슬슬 은퇴를 준비할 나이가 되어 있다. 그나마 아직 대중의 관심이 있을 때 바꾸지 못하면 정의당의 미래는 자칫 어두울 수 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다. 남의 당 지지자가 감히 끼어들어 할 말은 아니겠지만. 결과야 어쨌든 건투를 빈다. 오랫동안 고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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