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성폭행을 당하고 끝내 자살한 A씨와 그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꽤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간 모양이다. 하지만 사실 사건 자체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더라.


문득 운동하면서 라디오를 듣다가 해당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운동이 거의 끝나가던 중이라 다행이었지 끝까지 듣고 있지 못할 뻔했었다. 피해자를 성폭행한 개새끼들도 문제지만 기껏 신고했더니 그따위로 수사한 수사관들은 뭐하는 쓰레기들이란 말인가. 그런데 우습게도 그런 수사관들의 모습이야 말로 불과 얼마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평균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미투에 대해 다수 남성들은 말한다. 과연 의도가 순수한가. 한 점 거짓도 의혹도 없는 순수한 고발인가. 당연히 무책임한 폭로로 인해 엉뚱하게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혹시라도 그같은 고발이 사실이라면 그때는 어쩌려는 것일까. 만에 하나 진짜 피해자라면 대중의 그같은 의심과 비난은 또다른 상처가 될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더 움츠러들고 숨으려 하게 될 것이다. 그때 다수 대중은 말할 것이다. 보아라. 자기가 떳떳하다면 왜 숨겠는가.


유엔에서도 지적한 바 있었다. 한국의 성범죄 인정은 피해자의 인권이 아닌 피해자의 정조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성범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피해자가 자신의 정조를 입증해야 한다. 자신이 한 점 흠결없이 성적으로 순결함을 대중 앞에 입증해야만 한다. 시험이 가해진다.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에 대한 더 엄격한 심문과 수사가 이루어진다. 다른 의도가 없었는가. 그 과정에서 혹시나 피해자의 잘못이나 실수가 있지는 않았는가. 그러니까 피해자는 오로지 순수한 피해자인가. 진정 순수한 피해자라면 이쯤은 당연히 견딜 수 있어야 한다. A씨는 어쩌면 경찰이 정한, 정확히 이 사회가 정한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일 수 없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성폭행 피해자라면 이러할 것이다. 진정한 성폭행 피해자라면 이런 모습일 것이도 행동 또한 이러했을 것이다. 피해자가 아닌 자신이 판단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피해자의 피해사실까지 온전하 판단하려 한다. 과연 순수한 피해자라면 어째서 그와 같이 행동했겠는가. 순수하게 피해를 호소하려는 것이었다면 이처럼 행동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다. 미투를 대하는 다수 남성들의 태도와 당시 수사관의 그것이 전혀 다르지 않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작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은 여전히 한결같다. 피해자가 먼저 자신의 순결하고 순수함을 입증해야 그때 가해자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어째서 다수 남성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범죄 피해자들이 피해를 당한 그 순간 수사기관이나 심지어 주위에 그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해봐야 소용없으니까.


개인적인 경험이다. 회사에 어려서 좀 놀았던 노마 하나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자기가 놀면서 여중생 둘을 친구들과 집단으로 성폭행한 이야기를 자랑하듯 떠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주위의 반응이 어땠을까? 나는 인간취급도 안했지만 오히려 그런 내가 이상한 인간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인간이 피해를 당한 여중생들을 그저 돈이나 노리고 신고한 꽃뱀 쯤으로 비웃으며 이야기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다수 남성들은 그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당장 성범죄 피해사실을 세상에 고백한 미투 피해자들에게 쏟아지는 다수 남성들의 편견어린 반응들을 보라. 오로지 자기를 기준으로, 자신이 믿는 상식만을 기준으로 피해를 단정짓고 피해자를 단죄하려 하고 있다. 그때 A씨도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상식과 현실은 다르다. 머릿속으로 아는 이상과 실제의 세상은 전혀 다르다. A씨의 경우는 그래서 내가 아는 이 사회의 상식을 기준으로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밀양여중생성폭행사건 당시에도 오히려 경찰관들이 피해자들을 모욕주며 2차가해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그를 계기로 많은 것들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또한 많은 것들이 여전하기도 하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그나마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차라리 아무일도 아니라고 자기를 속이고 외면하는 쪽이 그나마 더 큰 상처와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치유할 수 없다면 혼자서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 스스로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고양이들이 그런다. 가족조차도 피해자를 대하는 표정이나 태도가 달라지는데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사실을 고백하고 도움을 구한단 말인가. 


그래서 지금 한꺼번에 봇물터지듯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으니까. 차마 하고 싶어도 두렵고 무서웠으니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지레 체념해야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판단은 옳았다. 아직도 먼저 피해자를 의심하고 자신의 상식만을 기준으로 피해자를 단정짓고 단죄하려는 세상의 편견은 여전하다. 피해자에게 먼저 결백을 요구하는 것도 그때나 전혀 다르지 않다. 물론 일부인지도 모른다. 고작해야 말많은 소수나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2위에 오른 김어준부터 그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해야 한다 말하고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들은 이제 자신의 정치적 결백까지 먼저 입증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냥 마음이 아팠다. 도와줄 수 없으니까. 모든 일이 그렇다. 억울하고 원통한데,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정작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끝까지 들어주고 한 마디 위로라도 해주면 되는 것이다. 굳이 가해자를 찾아 단죄하기보다 피해자가 겪은 일들을 들어주고 그의 편에서 응원하는 한 마디만 해주어도 좋은 것이다. 그 가운데 불순한 의도에 의한 것일 수 있고, 오해로 인한 것들도 섞여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은 나중에 차근히 살피면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피해자의 고백이 사실일 경우 또다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배려하는 것.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최소한의 상식조차 없었기에, 더구나 그것이 수사의 권한이 있는 수사관이었기에 비극은 일어나고 말았다. 아마 그 수사관은 아직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다수 남성들 역시 그것이 왜 잘못인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아예 이해하려고도 않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모든 비극들의 시작이었다.


굳이 펜스룰을 말하기 전에 과연 상대가 어떤 말과 행동들을 싫어하고 꺼리는가 주의하면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실수했다면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다시는 안그러겠다 반성하면 되는 것이다. 내 기준이 아닌 상대의 기준에서 생각한다. 내가 괜찮은 것이 아닌 상대가 불편한 것을 먼저 배려한다. 원래 예란 그런 것이었을 텐데도. 그것이 또한 이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이기도 하다. 여성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원래 드라마도 비극은 잘 보지 못한다. 코미디도 가학적인 코미디는 상당히 힘들어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될 수 있으면 아예 없는 일로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생각도 않으며 지내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 게 나 자신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모순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슬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