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묻고 싶은 것이 만일 자기의 가족 가운데 누군가 성범죄의 피해를 입었다면 그 사실을 바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피해를 입었으니 화나고 억울하고 그래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를 어떻게든 처벌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이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이고 정서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피해자들은 신고도 못하도 몇 년, 아니 몇 십 년 동안이나 혼자서 앓아야 했던 것일까?


그러니까 혹시라도 주위에 누군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정조에 대해 엄격한 사회분위기가 성범죄에 있어 피해자인 여성들을 오히려 도덕적인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도대체 피해자가 어디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성범죄를 당했는지 왜 궁금해 하는 것인가. 그리고 굳이 피해자의 뒤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웃으며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 범죄의 피해자인데 왜 가까운 사람들이 그를 먼저 따돌리려 하는 것인가.


당장 크게 화제가 되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사건만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온갖 관음증적인 이야기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었다. 어떻게 하다가 피해자는 그런 일들을 당했던 것일까. 그런데도 어째서 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을까. 오만 상상까지 더해지며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자신의 불순한 호기심과 욕망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고 만다. 누가 어떤 일을 당했다더라. 어쩌다 그런 일을 당했다더라. 그리고는 피해자의 인격과 관련한 이야기들까지 오르내린다. 그것을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감당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예 명예살인 수준으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가족이 피해자를 학대하는 경우마저 적지 않았다. 지금도 적지 않다.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은 그런 모든 과정들을 스스로 감당할 각오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단지 성범죄의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향한 전혀 달라진 눈길과 대우들을 직접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고소를 취하하고 먼저 숨어버리기도 했던 것이었다.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된 이유다. 지금 성범죄에 대한 무고죄도 폐지하자 주장하는 이유다. 무고죄로 역으로 걸고서 피해자를 괴롭힘으로써 과거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고소를 취하하고 물러나도록 압박하려는 시도가 현실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당연히 성범죄가 더 무겁지만 피해자에게는 피해자라는 낙인까지 덧씌어져 있었기에 무고죄에 대한 수사까지 더해지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대부분 남성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니 왜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바로 신고하지 않느냐 궁금해 하기만 한다.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된 사실이다. 남성은 여성을 모른다. 아니 전혀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째서 바로 신고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그때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지금에 와서도 이름을 밝히지 못한 채 익명으로 사실을 알리고 있는가. 그러니까 가족 가운데 성범죄 피해자가 있다면 그 사실을 당당히 주위에 밝힐 수 있는 사람이 현실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묻고 있는 것이다.


아주 교묘하다. 악랄할 정도로 영리하다.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무고죄로 피해자를 오히려 괴롭히는 것처럼 여성들이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사정을 악용해서-설사 무지로 인한 것이라 할지라도- 미투에 동참하려은 여성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 자신의 성범죄 피해를 밝히려면 실명부터 밝혀야 한다. 밝히고 그 결과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왜 피해자들은 당시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지금까지 침묵해 왔던 것일까. 몰랐다면 잔인한 것이고 알았다면 악랄한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그들이야 말로 또다른 가해자라는 것이다.


성범죄는 가해자로부터의 일차적인 직접피해만 문제가 아닌 것이다. 피해사실을 알리거나 알았을 때 가해지는 주위로부터의 이차 삼차피해가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가해자인 것처럼 죄인이 되어 스스로를 망치는 경우마저 적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알려고도 않을 테고, 이해하려고는 더욱 않을 테지만. 어째서 미투일까? 그래서 다수 남성들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저놈들이 원인이다. 끔찍하도록 혐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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