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괜히 밀양까지 찾아가서 상관도 없는 세종병원 화재에 대해 사과했던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정의 최종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입법권이 누구에게 있고 사법권이 누구에게 있든 지방행정을 누가 하든 결국에 그 모든 책임이 귀결되는 곳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바람이 불어 낙엽이 흩날리는 것까지도 책임져야 한다면 져야만 하는 자리가 바로 대통령인 것이다.


한 집단의 리더란 그런 것이다. 직장생활이란 자체가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스트레스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 하긴 결국 같다. 자기가 맡은 부서의 모든 일들이 부서장인 자신의 책임이 된다. 자기 밑에 있는 개인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조차 제대로 가르치고 이끌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 그러라고 남들보다 더 큰 권한과 더 많은 급여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내에서, 그리고 법무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최종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물론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법무부장관씩이나 되어서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은데 일개 검사 하나를 위해 매번 시간을 내고 사소한 일들까지 하나하나 꼼꼼이 챙기는 자체가 무리다. 그러라고 법무부 직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 때 사실상 법무부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기 지휘 아래 있는 직원들을 시켜서 사실을 알아보고 조치하도록 하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미사일을 쏘라고 시킨 것이 아님에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실험을 할 때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게 그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어서가 아닌 것이다. 그런 책임을 지라고 있는 정부이고 그런 책임까지 다하라고 법무부장관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서도 조사과정에서의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에게 또다른 더 큰 상처를 입히게 되었다. 그 부분은 법무부장관의 불찰이다.


비슷한 예로 세월호에서 사람의 뼈가 발견된 사실을 해수부 관계자가 장관의 지시까지 어기고 은폐한 사실을 끝내 직접 사과해야 했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김영춘 장관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실을 은폐하라 전혀 지시한 적 없었음에도 해수부의 장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의 책임을 져야만 했던 것이었다. 잘못은 해수부 임원들이 저질렀지만 그 과정에서 장관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다하지 못했다. 자신의 판단과 조처에 미흡함이 있었다. 그로 인해 크게 상처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김영춘 장관을 경질해야 했느냐면 그것은 불찰이고 실수인 것이지 장관자리까지 내놓을 결정적인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단계에서 자신이 제대로 사실을 살피지 못하고 그 결과 어찌되었든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가 더 큰 상처를 입었다면 그 모든 것은 최종책임자인 자신의 잘못이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검찰청과 협력하여 법무부 내부의 기강과 구조를 바로잡겠다. 사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도 취하지 못했었다. 설마 그런 정도 일로 장관더러 물러나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무시하고 자신의 책임을 외면한다면 그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경우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내가 노빠들에게 학을 뗀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뉴스공장을 보니 굳이 여자 아이스하키팀과 선수들을 흠집내지 않고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을 긍정하고 옹호할 수 있는 여지들이 아예 넘쳐나고 있었다. 미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만으로도 얼마든지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올림픽 출전 자체를 문제삼지 않으면서도 문재인 정부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성추행당한 피해자가 있는데 법무부 장관이 타겟이 되고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와 피해자의 변호사의 신상을 털어 흠집내고 문제삼으려는 것이 도저히 상식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니 설사 실제 그런 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은 다음 조용하게 슬쩍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가 전략적으로도 현명한 것이다. 왜 역풍이 보는데 온몸으로 맞으려 드는 것일까? 바람이 불면 때로 납죽 엎드리는 것도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서지현 검사와 관련해서, 아니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서 따로 특별히 잘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메갈정권이라며 젊은 층 가운데 무리한 비난을 퍼부을 정도로 여성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은 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다. 문무일 검찰청장 역시 적극적으로 진상조사와 근원적 해결을 지시하고 있으며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에 따른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무리해가며 박상기 장관을 감싸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오히려 법무부의 개혁을 위해서도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법무부의 인적구조를 철저히 쇄신할 수 있도록 다그쳐야 했는지 모른다. 차라리 박상기 장관이 자신의 자리를 걸고 이번 일의 원인이 된 법무부 내부의 문제를 철저히 바로잡으려 한다. 바로잡아야만 한다.


어떤 사건이든 피해자가 반드시 선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의 편에 선 사람들 역시 반드시 완전히 선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피해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피해가 가지 않도록 피해자의 입장을 잘 반영해서 관철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변호사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고 가해자와 그를 비호한 검찰의 조직과 문화, 심지어 법무부의 인적구조가 문제여야 한다. 이건 이것 그건 그것 분리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하여튼 누가 문빠들 아니랄까봐 아주 신났다. 혹시라도 검찰 내부의 성추행 이슈가 문재인 정부에 흠을 내지는 않을까 안달하더니 피해자와 그 주변의 약점을 잡은 모양이다. 문제있는 변호인으로 인해 피해자가 다른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문재인 정부에 작은 상처라도 입힐까 안달하는 모습이다. 정말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 하는데. 새삼 깨닫는다. 문재인 정부는 넘치도록 잘하고 있다. 그들만 그 사실을 모른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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