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절대화폐인 이유는 유일무이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무엇도 금을 대신할 수 없다. 모두가 바라고 희귀한데 그를 대체할 수단이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금은 언제 어느때나 금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화폐 역시 마찬가지다. 화폐란 하나의 단위사회에서 재화의 가치를 계량하는 규준이다. 국제사회에서 모든 경제지표를 달러로 표기하는 것과 같다. 그럼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가치는 달러라는 하나의 규준을 통해 동일하게 계량될 수 있다. 그런데 시장에서 달러와 함께 엔이나 유로, 위안까지 모두 단위로 쓰이게 된다면? 제각각 가치가 다른데 그 다른 규준으로 가치를 계량하게 된다면? 참고로 유로가 처음 기축통화를 선언했을 때 그 기준조차 달러였었다.


이른바 코인에 투자한 사람들부터 말로는 가상화폐가 미래에 제도권에서 쓰일 것이라 주장하면서 시세의 등락에 따라 이런저런 다른 화폐로 빠르게 갈아타고 있다. 비트코인에 미래가 있다면서 이제 나온지도 얼마 안 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코인이 돈이 된다며 나누어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니까 묻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가상화폐의 가능성이란 비트코인인가? 이더리움인가? 아니면 리플인가? 설마 그 모든 화폐가 동시에 통용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시장의 혼란이다. 1비트코인은 몇 이더리움이고 몇 스텔라고 스텔라는 다시 몇 사토시고. 외환시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각 단위화폐가 국가단위에서 실제로 쓰이는 화폐들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미국이라는 막강한 배경을 등에 업은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규준으로 삼는다. 


아니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이제 도대체 어떤 가상화폐가 있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상화폐가 존재한다는 이유부터가 특정한 가상화폐여야 한다는 전제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강조하지만 어지간한 가상화폐는 거의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그 말은 곧 블록체인기술만 쓸 줄 알면 아무라도 가상화폐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화폐가 그런 식으로 운영된 적이 있었다. 개인이 귀금속을 가지고 임의로 화폐를 주조해서 유통시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중세유럽에서 여러 군주들이 다투어 발행한 화폐들은 그 가치가 너무 제각각이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이슬람의 디나르화가 기준통화처럼 유통되고 있었다. 아무나 만들 수 있고 유통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치에 대한 더 확실한 보증이 가능한 정부나 금융권에서도 자체적으로 가상화폐를 만들 수 있다.


전체 가상화폐의 양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금이 그래서 지금 화폐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역사상 금이 실제 화폐로 쓰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너무 희소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충분히 쓸 만큼의 금을 항상 일정하게 공급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그나마 구리마저 부족해서 화폐공급에 항상 어려움을 겪어야 했었다. 각 정부나 금융권이 당장 필요로 하는 화폐의 양이 있는데 그것을 임의로 조절하지 못한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비례해서 더 많은 화폐를 요구하게 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시장에서 공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전황이다. 더구나 나중으로 갈수록 일정한 가상화폐를 채굴하는데 더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결코 공짜가 아니다.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서 정책의 안정성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 만일 진정 정부나 금융권에서 가상화폐의 기술이 필요하다 한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한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에서 달러를 기반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한다. 한국정부에서 원화로 대체할 수 있는 암호화폐를 만들어 시장에 유통시킨다. 기존의 가상화폐들은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확실한 화폐들이다. 그런 화폐들과 경쟁해야 한다. 아니면 공존해야 한다. 이 경우 각 정부들은 채굴업자들이 아닌 정책결정권자인 자신들이 직접 화폐의 생산과 유통을 통제할 수 있다.


암호화폐시장은 결코 자유로운 개인들이 중심이 된 이상적 시장이 아니다. 당장 암호화폐의 채굴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소수의 업자들이다. 그리고 현재 가상화폐의 대부분이 이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기도 하다. 정부보다 더 나쁘다. 일부 독재정권들은 정권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화폐를 발행하고 유통함으로써 경제를 교란시키기도 했었다. 갈수록 채굴의 난이도가 높아지며 이들의 독점은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견제가 가능한 정부와 견제 자체가 불가능한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어느쪽에 기대야 하는 것일까.


그냥 오를 것 같으니 돈벌기 위해 돈을 넣었다면 뭐라 하지 않는다. 당연히 오를 것 같으면 사는 것이고 떨어질 것 같으면 파는 것이 시장의 일상적인 원리다. 그런데 마치 미래에 무슨 대단한 가치라도 있는 것처럼. 언젠가 아주 대단한 가치가 실현되기라도 할 것처럼. 장관의 말 몇 마디 은행장의 말 몇 마디에도 하루에도 몇 번 씩 등락을 거듭하는 취약한 시장이다. 정부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정부의 정책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단지 아직 각국 정부들이 입장을 정하지 못한 틈새를 비집고 눈먼 돈이 몰려들고 있을 뿐이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알게 된다. 비트코인 같은 것이 최근에서야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여러 시도들이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교훈인 것이다. 금이 화폐로써 쓰이지 않는 것 같은. 과연 가상화폐는 어떨까.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는 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