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장관이 오늘 발표한 위안부협상의 후속조치는 결국 세 가지다. 하나 위안부 협상은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 둘 그러나 재협상도 위로금 반환도 않을 것이다. 셋 그러므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 최대한 명예와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사실상 원론적인 말이다. 그래서 일본으로서도 더이상 할 말이 없다. 협상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돈도 돌려주지 않고 재협상도 않는다. 하지만 협상의 내용 자체는 부정한다. 협상이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고 무엇보다 피해자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트집잡을 것이 없다. 만일 이것을 사실상의 파기라 주장한다면 파기의 책임은 일본에게로 넘어간다.


어차피 재협상을 요구해도 받아주지 않을 일본이다. 일방적으로 파기할 경우 외교적인 부담 또한 작지 않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이것을 빌미로 끌려다닐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협상을 해도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협상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해도 정작 국내사정으로 인해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음을 주장하면 그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여론보다 더 중요한 명분이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북핵문제로 어느때보다 한미일 공조가 중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정부도 명백히 잘못된 협상인 것을 알면서도 정면으로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 공은 일본에게로 넘어간다.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일단 명분상 협상은 유효하다. 돈도 받았다. 위로금은 아니지만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도 일본 정부와 협의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상간 합의가 있었다고 피해자를 나몰라라 하는 것은 보편적인 인권의 관점에서 맞지 않는다. 정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해서는 안되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너희가 파기하라. 10억엔은 볼모다. 그 용도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순간 위안부 문제는 다시 재협상의 테이블 위에 놓인다.


주도권은 다시 한국정부에게로 넘어온다. 굳이 한국정부가 나설 필요도 없다.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정부차원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에 따라 지원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마저 받아들일 수 없다면 파기는 일본의 몫이다. 일본이 파기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한국정부가 바라는대로 이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협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실제 실행되지는 않는다. 절묘한 한 수다. 그럼으로써 외교적인 부담도 덜고 위안부 문제에서 주도권도 다시 가져온다. 외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감정대로라면 바로 파기하는 것이 가장 좋았을 테지만. 그러나 주어진 조건에 최선의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외교 아니던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한국정부에게 일본과의 외교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한일관계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갖는다. 그래서 역대 정부에서 과거사 문제는 외교현안과 별개로 다루어져 왔었다. 당장 해결될 수 없는 과거사나 영토문제를 외교현안과 연계하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다. 그것을 틀어버린 것이 이명박과 박근혜다. 국내정치를 위해 반일감정을 이용하다가 외통수에 걸리고 말았다. 일본과의 관계가 경색되며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무리한 협상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는다.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외교현안은 현안대로, 그러므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되 그러나 형식은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협상 자체는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고 계승하는 것으로 한다.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해결되지 않지도 않았다. 나머지는 이전 정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일관계 안에서 풀어가야 한다.


그래서 일본 정부의 협상과는 상관없는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협상은 인정하지만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앞으로 한국과 일본 정부가 차근히 해결해 갈 문제다. 다시 말하지만 정면으로 반발하려면 일본정부 자신이 협상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 한일관계의 경색을 각오해야 한다. 국내외적인 부담은 일본정부에게 돌아간다.


바로 이런 것이 외교라는 것이다. 최대한 둥글게 모나지 않게 튀지 않게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은근슬쩍 이익을 자기 앞으로 끌어온다. 외교적 수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호학은 그같은 외교적 수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달했다. 절묘하게 책임은 피하고 권리를 찾으면서 부담을 상대에게 지운다. 트집잡을 여지조차 없이 협상 자체를 사실상 무효화시켜 버린다. 누가 누구더러 아마추어라 하는 것인지.


다른 의미로 속시원한 발표였다. 통쾌하지는 않았지만 무릎을 칠 정도로 절묘했다. 하긴 지난 8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외교적 역량이란 것이 이 정도 수준이기는 했었다. 비로소 지난 9년의 시간을 되돌려간다. 아쉽지만 최선이다.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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