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이란 국민국가의 부산물에 가깝다. 그리고 국민국가란 국민개병제로부터 출발한다. 더이상 군이란 특권계급도 아니고 군주 개인의 사비로 고용한 용병도 아니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군을 이루고 그 군을 동원하고 유지하는 보다 효율적인 체계를 갖추기 위해 근대의 국가들은 바쁘게 체제를 정비해 왔었다. 국민교육도 그 일환이다. 한 마디로 국가가 필요할 때 동원할 수 있도록 개인을 '국민'으로 개조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국민교육에서 처음 배우는 것이 국가이고, 국민의 의무이며, 군주시대에는 군주에 대한 충성이었다. 명령도 못알아먹는 어리석은 백성은 군주를 위해서도 필요없다.


그래서 한 편으로 근대성이란 보편과 일반을 강조한다. 보건과 건강이라는 개념이 발생한 것도 바로 근대에 들어서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군대에서는 너무 커도 문제고 너무 작아도 문제다. 너무 살쪄도 문제고 너무 말라도 문제다. 국민 개인이 군복과 무기를 직접 장만해서 복무하던 시절이라면 상관없다. 자기 입을 것 쓸 것은 자기가 알아서 준비하면 될 테니까. 그러나 그 비효율을 알기에 국가를 효율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군복이며 무기며 각종 장비들을 국가에서 구입하여 일괄 지급함으로써 보급의 효율성과 전투의 능률성을 높인다. 간단하다. 물론 근대 국민국가에서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실천에 옮겨진 것이었지만 단지 근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국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직 군복무를 하지 않는 개인도 국민인 이상 언제든 징집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사실 군에서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여혐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니까. 장애인을 군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 신체검사에서 너무 키가 크거나 작거나 살이 쪘거나 말랐거나 한 경우 징집을 거부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군이 요구하는 표준에서 벗어나 있으면 징집대상에서 제외한다. 전부터 예로 들어온 것이지만, 이를테면 전쟁이 나서 군이 민간의 차량을 징발하는데 레이나 모닝은 버려두고 렉스턴이나 티볼리같은 suv만을 징발한다고 해서 기아만, 혹은 쌍용만 차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 필요해지면 레이나 모닝 같은 경차로 징발할 수 있을 테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견고하고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suv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보편적인 일반의 성인남성을 전제한 현재의 군체계에서 여성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여성을 징집함으로 인해 더 많은 수고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여성 장교나 부사관을 그냥 숟가락 몇 개만 얹으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하면 여성도 징집한다. 실제 전쟁이 일어나면 전시동원령이라는 것이 선포된다. 모든 개인의 인신과 재산이 국가의 방위를 위해 동원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여성이라고 예외는 없다. 심지어 경증장애인이나 미성년자 고령자들마저 최악의 상황에서는 징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전면전이라는 것이다. 총력전이라고도 한다. 북한이야 그럴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 중국과 전쟁이 나서 전쟁이 길어지면 부족한 병력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을 전투병으로 훈련시켜서 전선으로 투입할 수도 있다. 다만 평상시에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하지 않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각종 트럭이며 suv차량이며 징발하게 될 테지만 평상시에는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을 징집함으로써 얻어지는 국방상의 이익보다 여성을 징집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효율성이 더 크기 때문에 굳이 여성을 징집하지 않는 것이다. 원래 그것이 남성이 여성을 차별해 온 가장 중요한 이유였었다.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지만 고려의 어느 여성이 장군이 되고 대신이 되어 나라의 중요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는가.


정치권에서 여성징집 주장에 아예 콧등으로도 들은 척을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상식만 있어도 이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냥 감정이 시키는대로 따를 수 있는 허술한 사안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당장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남성을 전제한 현재의 군체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군복이며 각종 장구류며 무기까지도 여성이 사용할 것을 전제로 다시 설계하고 디자인해야 할 지 모른다. 그냥 장교 몇 부사관 몇 더해지는 수준이 아니다. 더구나 군이라는 위계 아래에서 벌어지게 될 여러 문제들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같은 남성을 대상으로도 성추행과 성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하물며 여성이 그 부조리한 위계 아래로 대거 들어오게 된다. 당장 억울하고 분하다고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차라리 인구가 줄어들면 전체 병력을 줄이더라도 굳이 여성을 징집하는 비효율까지 감당할 필요는 없다. 실제 세계적으로도 여성을 징집하는 경우는 거의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투병은 더 적다.


참고로 여성을 징집하더라도 정작 전투병으로 사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전장에서 여성이 놓이는 불리한 조건과도 크게 관계가 있다. 그것은 남성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예를 들어 동료랄 수 있는 여성들이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고조된 적에게 포로가 되어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되었다. 간단히 보스니아 내전에서 강간공장을 목격한 보스니아 남성들의 감정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런데 그것이 무력한 민간인이 아닌 자신과 같이 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았고 무기까지 든 동료군인이었다. 이스라엘도 그래서 여군들을 전투병과에서 다시 배제하는 듯하다. 역시나 여성은 전투병으로서는 그다지 효율이나 능률이, 아니 그보다 먼저 방해되는 수준으로 여러가지로 성가시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많다.


그냥 분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도 남성과 육체적으로 대등하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어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의 근육구조가 다르듯 남성과 여성의 근육구조도 전혀 다르다. 전투라고 하는 자체가 철저히 남성의 신체구조를 전제로 발달되어 왔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무기과 군사기술들이 남성의 신체구조 아래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남성과 여성을 같은 링 위에 세운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월드컵에 출전하고 육상경기를 한다. 과연 가능할까? 그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혐이라 불려도 할 수 없다. 사실이니까.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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