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말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시간조차 아쉬운 것이다. 당장 눈앞에서 환자가 죽어가는데 병원이 아니고 도구가 부족한 것만 탓하고 있을 것인가? 피를 흘리면 지혈부터 해야 하고 호흡이 멈췄다면 강제로라도 다시 숨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면 커터로 기도를 절개할 수도 있고, 아무 천이든 빌려다 상처부터 압박해야 할 수도 있다. 위생이 어떻고 감염이 어떻고 하는 것은 일단 사람이 살고 난 다음에 따질 일이다. 그같은 처치가 적절했는가의 여부는 응급처치를 마치고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한 다음에 따져도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응급상황이다.


극단적으로 북한과 전쟁이 벌어진 상황을 가정해보자. 전방에서 국군이 치열하게 북한군과 교전중이며 이따금씩 포탄이며 전투기가 떨구는 폭탄이 일상공간까지 침범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야당이 정부의 인사며 전략들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참모총장의 인사가 부적절하다. 26사단의 사단장의 처가에 비리가 있다. 동두천에서의 방어전술은 부적절했다. 철원에서의 반격작전은 너무 성급했다. 그러니까 야당의 비판을 정부가 받아들여야지만 국회에서 협력해 주겠다. 그토록 당쟁의 폐해가 심했던 조선에서조차 임진년과 병자년에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놓이자 당쟁을 자제하고 당장의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경신대기근 당시도 최소한 눈앞의 기근을 극복하는데만 모든 조정이 하나가 되어 대처하고 있었다. 그것이 진짜 위기라는 것이다. 분열하면 죽는다. 잠시라도 지체하면 늦는다. 그러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천에 옮기고 생각은 나중에 하자.


참 말들이 많다. 이래야 한다. 저래서는 안된다. 정부가 뭐라도 하려 하면 그것은 틀렸다. 정부가 미국과 협력해서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은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제안이 더 타당함을 증명하고 채택되도록 할 것인가. 무엇보다 어떻게든 아쉽고 부족한 대책이라도 실제 현실에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 아닌가. 수단의 옳고 그름이 아닌, 효율성이나 적합성이 아닌 어찌되었든 정부가 채택한 방법이 현실에서 실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 아닌가. 진정 북한의 핵문제가 심각하다면. 북한의 핵보유로 인해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면. 9.11테러 당시 미국에서 야당이던 민주당이 보인 모습들을 떠올려 보라. 


한 마디로 아직은 살 만하니 잡생각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니까 이순신의 고마움보다는 그로 인해 위협받을 왕권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선조처럼.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라 생각하지 않으니 자기 주장만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정부를 꺾고 누른 뒤 정국을 자신들 마음대로 주도하게 된 다음에 해결해도 된다는 여유가 한가하게 저마다 다른 주장을 앞세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언론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미사일 발사 및 폭격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면 미사일 몇 발과 폭탄 몇 발 떨구는 비용이 아까워 그런 비판기사를 낼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진짜 안보불감증에 빠진 것은 과연 누구인가? 전쟁은 절대 안된다는 말이 부적절하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말은 너무 유약하게 들린다. 그래서 전쟁이 나면? 속시원하게 북한을 폭격하고 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겠는가? 군사행동이라는 옵션을 배제했을 때 정부에게 가능한 선택지란 무엇이 남아 있을까? 비굴할 정도로 미국의 비위를 맞추며, 일본과의 문제도 뒷전으로 미루고, 잠시도 쉬지 않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는 발로 뛰고 누군가는 평가하고 비판만 하고 있다. 누가 더 심각하고 다급한가. 한가한 사람은 좋다. 인생이 즐겁다. 항상.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