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는 명분, 다른 하나는 힘이다. 명분이 없으면 단지 폭력일 뿐이고, 힘이 부족하다면 공리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북핵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명분과 그를 이룰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한 마디로 그럴 수 있는 명분도 그럴만한 힘도 가지지 못했기에 정작 당사자이면서도 그동안 주도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북핵문제가 지금처럼 어렵게 꼬여버린 이유 역시 명분과 힘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된 현실 때문이었다. 북한이 대화를 요구하는 것은 실질적인 힘을 가진 미국이다. 미국은 언제든지 무력으로 북한정권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그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인질처럼 잡혀 있는 대한민국의 존재 때문이다. 대한민국이야 말로 원래 북한과 역사적으로 한나라를 이루어왔던, 한때 참혹한 전쟁까지 치렀었고, 지금까지도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직접당사국이다. 그렇더라도 전략적인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면 그냥 포기하면 될 텐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군사대국을 그런 식으로 쉽게 함부로 포기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현실은 미국의 직접적인 무력응징을 원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응징하는 순간 자칫 파멸적인 전쟁으로 다시 대한민국 전체가 휩쓸릴 수 있다.


북핵문제는 대화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을 쓰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을까? 하지만 북한 자신이 대한민국을 원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북한을 강제로 협상테이블로 끌고나올 힘을 대한민국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명분은 있는데 그 명분이 북한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동안 김영삼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매번 방법을 달리하며 북핵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온갖 삽질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직접적인 수단을 가지지 못한 채 강경하게 대응한다고 하는 수준이 미국의 전략적 인내를 등에 업고 말뿐인 강대강 대치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로 다가서서 대화를 시도해봐야 뒤에 있는 미국이 호응하지 않으면 그 또한 아무 의미없는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미국의 힘과 대한민국이 가진 명분을 최대한 일치시킬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미국을 설득해서 대한민국의 전략이 미국의 전략이 될 수 있도록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더구나 국내정치적인 문제도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유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지지가 곧 정부의 힘이고 국정의 동력이 된다.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데 정부가 힘을 가지고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도 그런 정부의 주장에 크게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정권이다. 언제 선거에서 져서 정권을 내주고 교체될지 모르는 정부다. 괜히 인기도 없는 정부와 협상이라도 맺었다가 그것이 다시 무효화되거나, 아니면 그로 인해 국가간 관계가 훼손된다면 손해가 막심이다. 하물며 북핵문제와 같은 중대한 사안에 있어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예상할 수 있는 일관되고 합리적인 최대한 변수를 배제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같은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국민의 여론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국민이 불안해하고 필요하다 여긴다면 그대로 따라준다. 


그동안도 몇 번이나 강조해 말했던 가치부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사드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드의 배치가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힘을 가진 미국이 요구하고, 국내 여론 역시 사드배치에 호의적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그것도 이전보다 비약적으로 파괴력이 높아진 실험결과로 인해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최대한 북한의 핵무기가 대한민국 국민들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사드는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한 무기라기보다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배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을 달래고 국민을 안심시킨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맹이며, 국민들에게도 미국과 함께 북핵문제에 단호히 대처할 것임을 천명한다. 국민이 마음놓고 정부를 지지하며, 대한민국이 자기 동맹임을 미국이 믿고 신뢰하게 된다면 바로 그것이 한반도에서 북핵문제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미국과 보조를 함께 하며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을 설득하고 나서는 작업을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결국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미국의 힘이고, 대한민국이 가진 직접당사자로서의 명분이다. 물론 나름 경제강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지위도 그다지 허투루 여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도 그래서 첨예한 과거사문제를 잠시 뒤로 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최우선과제로 협력을 강화하겠다 선언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 것이다. 역사적으로야 어쨌든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뭉친 동아시아 군사동맹의 중요한 한 축이다. 일본을 배제하고 미국하고만 동맹을 강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다. 일본과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해야 미국과의 관계도 원만해질 수 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불협화음도 최소화할 수 있다. 정확히 미국을 향한 메시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이만큼 중요한 과거사 문제까지 양보해가며 북핵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할 모든 각오와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미국의 이익을 거스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강력해지면 대한민국의 행보는 곧 중국과 러시아에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직접 대결하는 부담을 덜고자 할 때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미국 없이 북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국내적인 문제 역시 순리대로 풀어가기가 어려워진다.


중대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비상상황이다. 수소폭탄이면 이미 준전시상태라 봐야 한다. 서로 총알이 날아다녀야 전쟁이 아닌 것이다. 군대는 그 전쟁을 치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것이지 군대가 전쟁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비상상황에서는 비상의 대책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정부가 주도권을 잃지 않고, 필요한 명분과 힘을 확보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풀어갈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이 일어나면 인신과 물자 역시 정부의 의지에 의해 임의로 징발하게 된다. 때로 전쟁의 승리를 위해 일시간 국내의 치안과 질서를 억압적으로 통제하기도 한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드배치에 대한 개인의 판단이란 이같은 엄중한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나는 사드는 그다지 실전에서 쓸모가 있는 무기가 아니라 여기고 있다. 성능은 어떨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그로 인한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부담 또한 작지 않다. 그러나 필요하니까. 결과적으로 필요하다 여겨지니까. 그런 점에서 지지가 아닌 용인이다. 정부가 하려는 목적을 위하 그같은 수단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정부를 지지하기에 그 필요성도 인정하게 된다.


모순되지 않다. 무엇을 위해 사드를 배치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드를 어디에 쓰려 무리하게 배치하고 있는가 하는 단순한 물음이다. 과거의 용도와 지금의 용도가 다르다. 과거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전과는 전혀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미운 건 그래서 북한이다. 그놈들이 다 망쳐놓았다. 지금으로서는 북핵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다. 그만큼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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