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차선보다는 최악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 차선이라는 자체가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모자르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이보다 나은 대안이 없으니 그냥 이대로 만족하고 인내하며 살자. 그런데 정작 최악을 겪게 되면 다시는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 보다 적극적으로 궁리라는 것을 하게 된다.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을 막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과적으로 IMF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경제의 구조개혁은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누구도 한창 잘나갈 때 무언가를 고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한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은 국민적 지지는 한 마디로 박근혜와 새누리당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이제 출범한지도 얼마 안됐는데 그동안 추진한 정책들 가운데 구체적으로 결과가 나온 것이 얼마나 된다고 이리 높은 지지율이겠는가. 단지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면 2달은 충분히 길다. 그동안 아주 이슈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언론 또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개별 정책에 대한 지지를 보더라도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보다는 낮은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왜?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식으로 일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해야 하는지도. 개별의 정책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그같은 정책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지지인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정부가 어떤 식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지 모두가 낱낱이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신뢰다. 정책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정책을 내놓기까지 정부가 기울인 노력과 선의를 인정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당장은 정책에 대해 동의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합리적인 과정과 절차를 통해 내놓은 정책이라면 한 번 그 결과를 호의로 지켜봐 주겠다. 


한 마디로 이제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들도 민주주의 시민에 걸맞는 보다 성숙한 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원수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가. 토론이다. 대화이고 합의다. 정치란 공공의 것이다. 정책이란 공공의 것이다. 정치인 개인의 의지로 법도 만들고 정책도 구상하고 하겠지만 그 모든 것은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전처럼 그저 자신의 선의만을 믿고 밀어붙이는 그런 리더십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당들이 더 막무가내로 보일 정도로 인내하면서 하나하나 야당을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언론이야 아무리 왜곡해도 그동안 추경이 통과되기까지 야당이 어떤 태도를 취했고 여당이 그에 대해 얼마나 성의를 가지고 노력을 다했는가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했으면 되었다. 다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설득하고 양보하려 노력했으니 할 수 있는 성의는 다 보였다. 20여명의 결석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민주당 지지율까지 올랐다.


모르는 것은 야당 뿐이다. 그런 정치를 해 본 적 없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뿐이다. 국민의당도 그저 몇몇 유력정치인의 입을 통해 선언만 하고 있을 뿐이다. 언론과의 유착을 빌어 일방적으로 국민들에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많은 말들을 쏟아내는 야당들과 달리 민주당은 말을 자제하고 있다. 대표 추미애 정도를 제외하면 굳이 국민들에 자신들의 주장을 과장하여 선전하거나 강요하고 있지 않다. 민주당은 여당으로서 청와대와 함께 간다. 청와대 역시 여당인 민주당과 함께 간다. 그런 굳건한 신뢰와 다르게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이나 말이 많은 만큼 안에서도 그 말들이 서로 갈라져 따로 놀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당내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서 당론을 정하고 공식적으로 행동에 옮기면 될 일이건만 그런 기본적인 체제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도저히 이런 정당들을 믿고 나라살림을 맡기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긴장하고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정책에 대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몇 가지 말이나 행동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초심을 잃지 말고 한결같이 지금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 자기만 옳다는 독선을 버리고, 설사 자기가 옳다는 확신이 있어도 그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와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일임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권자다. 국민이 곧 주인이다. 민주당에서 오히려 다른 야당들보다 먼저 혁신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당을 당원과 국민들에 돌려준다. 가장 기본이다. 과연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이토록 열렬히 지지해 주고 있는가 새기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 온 그것을 국민들이 좋아해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이은 다음 정부의 짐이 참 무겁다. 이명박이 보통만 되었어도 사실 대한민국 정치가 이모양까지 되지는 않았었다. 기껏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가 이루어놓은 성과를 단지 정치적인 색깔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모두 지워 버리고 말았다. 말 그대로 잃어버린 9년이 되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다. 만일 다음 정부가 민주당에서 나온다면 - 아니 지금 하고 있는 그대로만 한다면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다음 대통령도 민주당에서 나온다. 내년의 지방선거와 3년 뒤 총선도 물론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정치에 어떤 규준을 세울 것인가. 첫 걸음이 곧 뒷사람에 길이 된다.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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