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던 직장이 망해서 백수질 중이다. 그동안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두 달 잡고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중에 있다. 물론 가끔 구인사이트도 뒤져본다. 혹시라도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좋은 자리를 놓치면 어쩌나. 그런데 그렇게 구인사이트 뒤지면서도 적대 얼씬도 않는 직종이 하나 있다. 바로 운전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운전을 요구하면 바로 패스한다. 나는 도저히 그것만은 못하겠다.


아마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고 도로로 나섰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무서웠다. 무섭기 이전에 무척 피곤했다. 도로의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아주 작은 변화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어쩌면 더 운전에 익숙해진 뒤라면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때 인상이 운전이란 감히 내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일하면서 학원에 다닌 터라 하필 야간에 도로주행연습을 했던 것도 한 몫 했다. 비까지 내리는데 차는 몰리고 앞은 잘 보이지 않고 그런데 도로주행연습을 해야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게임도 두 시간 넘게 집중하면 슬슬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그냥저냥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집중해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여보려 애쓰는 동안 몸도 마음도 지치는 것이 바로 게임으로 나타난다. 그저 단거리를 운전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버스를 몰고 나가면 한 시간 이상, 혹은 그 몇 배의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야 한다. 운전석이 편하기라도 한가. 운전을 하지 않는 동안 편히 쉬기라도 하는가.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은 종점에 도착하면 차를 세우고 직접 청소까지 마친 뒤 차안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배차시간에 돌아와 차를 몰고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운전기사들의 손에 수많은 버스 승객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철도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도 했었다. 고작 기차기관사가 무슨 돈을 그리 많이 받는가고. 뭐 1억씩이나 맏는 것도 아니다. 단지 수천만원 정도인데 바로 그 기관사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한순간에 수백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정비사가 고장 하나를 잘못 파악하면 그것 때문에도 수백의 목숨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니까 더 우수한 인력이 기관사가 되고 정비사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일에 대해 최대한 만족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무엇보다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휴식과 재충전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단지 내 지갑에서 지불하는 운임이 너무 비싼 것만이 불만이다. 더 싸게, 더 적은 사람만을, 더 혹독하게 굴려서 나의 이익을 보장하라.


이번 경부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고속버스 졸음운전사고에 대해 버스운전사들이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차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바로 나온 반박이었다. 그러면 승객이 버스를 더 오래 기다려야만 한다. 어째서 그만큼 더 많은 버스운전사를 고용해서 교대배치하면 된다는 생각은 않는 것일까? 그러면 그 만큼의 인건비가 다시 자신이 지불하는 운임에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내 돈과 시간은 아껴야겠고 그러자면 버스운전사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고 고생하면서도 더 철두철미하게 조금의 실수도 없이 운전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 전반에 깔린 사고다. 비용은 더 지불하기 싫고,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노동력만을 최대한 쥐어짜서 그 만큼을 대신하도록 강요한다. 그로 인해 사고가 일어나도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 책임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같은 조건에서도 사고같은 건 일으키지 않는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게 대단한 것일까, 사고가 일어난 것이 잘못인 것일까.


하루 무려 18시간을 운전했다고 한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나도 하루 12시간 몇 년 동안 일한 것만으로 아직까지도 몸도 마음도 지쳐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다. 다른 일도 아닌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머 몇 시간씩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도로를 운전하며 달려야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하고, 그러고 하루 쉬는 것이 제대로 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겪을 비용과 불편이 너무 크니 그냥 이대로 운전사들이 더 잘하도록 관리감독하면 된다. 운전사들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철두철미하게 운전에 임하면 된다. 그래서 그렇게 학교다닐 때부터 혹독하게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어른들이 바라는 완벽한 아이가 되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완벽한 구성원이 되지 못할 테니까.


비단 운전사만이 아니다. 최근 학교비정규직노조가 파업중에 있다. 그가운데는 급식을 담당하는 조리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밥하는 아줌마들이라 불린 이들이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일을 허술하게 책임감없이 하는가에 따라 어쩌면 수백에 이르는 아이들의 건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부모들도 혹시라도 급식과정에서 무슨 사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더이상 마음놓고 자기일에 종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학부모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일을 그만두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급식을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사회적으로 누리는 혜택 만큼 대가를 지불하기는 싫다. 그들에게 지워진 책임의 무게는 큰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 지불해야 할 비용과 관련된다. 그냥 지금 이대로 열심히만 하라.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곧 자존이고 존엄이고 책임이고 권리다.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는가가 자신의 가치와 직결되기도 한다. 단순히 그들이 받는 임금만이 아닌 전반적으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더 많은 휴식을 취하면서 최선의 컨디션으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운임은 당장 가계에 부담이 될 테니 결국은 정부차원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사회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다는 동의가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운전사를 고용하고, 그로써 운전대를 잡은 그들의 컨디션까지 제도적으로 배려하고 보조한다. 그만한 자격이 있다. 대단한 대학을 나와서 거창한 신분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못한다. 나는 그런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그것을 잘안다. 그렇다면 충분히 그들은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마 한참 전부터 주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이대로 저비용구조로 계속 가서는 안된다.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아니 이미 전부터 문제는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저 개인의 문제라 치부하며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승객들이 더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더 적은 운임만으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그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에게는 어떤 책임이 지워져 있는가? 세상에 공짜란 없다. 값싼 것은 값싼 만큼의 가치를 한다. 언제까지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지금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운전 아닌가? 못배우고 없는 사람들도 아무렇게나 잡는 것이 운전대 아니던가. 그래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더 엄격하게 자격을 관리한다. 더 나은 대우와 함께 스스로 관리할 책임까지 부여한다. 더 어렵고 힘들 수 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승객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내 안전을 책임진 사람이다.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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