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쁜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도움이 필요하고 상대의 양보가 필요하기에 상대의 양해를 구하고자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언어로 대화해야겠는가.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극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보여주며 원만하게 끝나고 있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장 공동언론발표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 전에없이 강경한 북한에 대한 발언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듯하다. 한 마디로 트럼프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대통령과 가장 크게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 결론이야 어떻게 내리든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결론은 상대의 뜻대로 내리더라도 과정에서는 항상 자신의 주장을 가장 먼저 앞세우고 있었다. 좌측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말은 과격한데 행동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말로는 상대를 자극하고, 행동은 그 말을 지지하는 또다른 사람들을 배신한다. 이래저래 양쪽에서 욕먹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협상가로서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다르다. 확실히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지 않는다. 어차피 실현되지도 않을 자기 주장을 앞세우느라 상대를 거스르지 않는다. 어차피 북한 핵문제 해결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이 양해하고 도와주어야 문재인이 의도한대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미국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의도가 미국 정부의 입장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미국의 전략 아래에서 대한민국을 자신들에게 허락된 최선의 노력들을 기울일 뿐이다. 결정도 선택도 미국이 하고 그 모든 과실도 미국이 갖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니까 미국 너희들이 옳다.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옳다. 다만 그 가운데 대한민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역할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충실히 하고자 한다. 미국을 높이고 우리를 낮춘다. 트럼프 대통령을 철저히 높이면서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주장은 뒤로 숨긴다. 선물보따리도 잔뜩 챙겨들고 갔었다. 공동발표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장 먼저 미국을 방문해서 장진호전투기념비에 헌화하고 6.25참전용사들과 만난 것도 그런 일환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미국에 큰 은혜를 입었고 아직도 미국에 고마워하고 있다. 사드에 대해서도 단지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는 것 뿐이며, 그 민주주의는 미국이 대한민국에 선물한 것이었다. 사드배치를 철회하려는 것이라 절대 오해하지 말라. 


그렇다고 아예 자기 이야기를 안했는가면 그럼에도 결국 미국의 의도대로 합의된 것은 거의 없었다. 우호적이지만 아직 상당한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한 마디로 내 의도와 전혀 다른 주장인데도 들어줄만 했다. 충분히 인내하고 고려할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전달하는가 하는 것이 외교의 기술인 것이다. 협상의 기술이다. 같은 말도 얼마나 기분나쁘지 않게 오히려 더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듬고 포장할 수 있는가.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능력이거나 아니면 청와대에 탁월한 전략통이 있다. 그렇더라도 그것을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은 문재인 자신의 역량이라 봐야 할 것이다. 


기대한 것보다 더 좋았다. 전에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친근하게 대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까지 없던 극진한 예우를 보이는 것도 그랬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다 하고 회담을 마쳤다.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면 아무나 외교를 할 수 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면 외교라는 자체가 필요없어진다. 더 긴 인내와 노력 그만큼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 첫 걸음을 뗀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확실히 정상회담은 커녕 후보시절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띄워주는 발언을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트럼프를 높이 평가하면서 자기야 말로 트럼프의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이런 것이리라. 과연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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