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못해 사기업에서조차 일정규모 이상만 되면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내용은 무시하도록 구조가 되어 있다. 보고서로 시작해서 보고서로 끝난다.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어떤 절차와 과정을 통해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났는가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객관적인 평가와 함께 문서화해서 남긴다. 


오늘 하루 사업하고 끝낼 것이 아니다. 나 혼자 모든 일을 다 처리할 것도 아니다. 아니 혼자서 일하는 프리랜서라 할지라도 혹시 모를 나중을 대비해서 모든 내용을 문서로 구체화해서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으로써 나중에라도 해당 자료를 찾아보고 참고할 수 있고, 혹시라도 이전의 사업을 이어서 하려 할 경우 연속성도 확보할 수 있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인계할 때도 과정과 절차가 매우 단순해진다. 한 마디로 언제 어느때 누가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하물며 수많은 국민의 안위와 생활이 걸린 국정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전근대왕조이던 조선에서조차 사관들이 거의 매일같이 사초를 기록하고 그것들을 모아 다시 실록으로 정리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었다. 일성록이나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등등 언제 다 번역하는가 싶을 정도로 조선의 거의 모든 것이 문자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어차피 사람은 수명이 다하면 죽는다. 왕조 역시 천명이 다하면 망해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라가 고려로 바뀌고 다시 조선이 세워지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역사를 사유화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살았던 모든 시간들을 자신들만의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의 영원을 손에 넣는 방법이다. 기억과 기록이 남아 있는 한 인간의 의식 속에서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있다. 잘한 것도 못한 것도 그래서 당장 자신이 욕먹을 상황임에도 차라리 수정해서 내용을 추가할지언정 실록의 내용을 고치지는 않았다.


나랏일이라는 게 어느 국무위원 개인의 사적인 사정이나 판단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인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공무원들은 공적인 존재로서만 존재해야 한다. 개인 문재인이 아니다. 개인 조국도 아니다. 개인 임종석도 아니다. 대통령 문재인이고 민정수석 조국이고 비서실잘 임종석이다. 모든 행위는 그같은 공적인 존재이자 역살로써의 자기 이름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공식적인 문서로서 모든 행위가 구체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으로서 민정수석으로서 비서실장으로서 한 모든 행위들이 기록으로 남아 공적인 비판과 평가의 근거가 된다. 그럼으로써 항상 공적인 대상으로써 공공의 감시와 비판을 의식하여 모든 행동을 주의해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한다. 나 자신의 모든 판단과 행동은 나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에게 지워진 공적인 책임과 역할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다시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지금의 기록들을 남겨 나중을 위해 더 긴 시간속에 공유한다. 


군인이라서가 아니다. 군과 관련한 사안이라서가 아니다. 기본이다. 상식이다. 국무위원이다. 연예인따위가 아닌 진짜 공적인 책임과 역할을, 수천만 국민의 안위와 생활을 책임지는 공적인 자리에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드러난 말과 행동들은 구체화되어 책임과 권한을 위임한 국민들과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공적인 책임과 역할에 따른 것이 만큼 그것을 위임한 국민들에게 평가받고 비판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들만이 전부는 아니기에 나중에라도 필요할 경우 얼마든지 근거와 자료로써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화된 자료를 후손들에 남겨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을 담보하는 것이 바로 문서화이고 공식화다. 오로지 구체화된 문서로써만 모든 일을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자료로써 공식화되지 않은 것은 아예 없는 것이다. 특수활동비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명백히 국민의 세금에서 지급되는 돈임에도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그에 대해 어떤 판단도 평가도 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특수활동비가 적절하게 쓰였으므로 부족하거나, 아니면 부적절하게 낭비되었으므로 줄여야 하거나. 거기에 하물며 국민의 안위와 관련된 안보문제가 걸리는 것이다.


굳이 국방부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행정부의 수반이다. 군통수권자다. 최종적으로 보고를 받고 결제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라고 국민이 뽑은 전국민의 대표다. 그런데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론이 먼저 보도했는가 여부는 논점을 벗어난 것이다. 언론이 먼저 보도했어도 정식 라인을 통해 공식화되지 않은 이상 그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진짜 몰라서 격노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장 국정원이 있다. 국가원수의 자격으로 국정원의 보고를 받을 수 있는 이상 사실상 공적 구조 안에서 그만한 큰 일을 아예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언론이 먼저 보도했고 야당의 논평도 있었다. 다만 국가의 일이다 보니 정식 라인을 통해 구체화하고 문서를 통해 공식화한다. 그러므로 지금 대한민국에는 4기의 사드가 추가로 들어와 있다.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들어와서 배치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해 나갈 것인가. 그런데 아예 보고조차 되어 있지 않다. 아예 논의 자체를 시작도 못하게 되었다. 국기문란이 다른 게 국기문란이 아니다. 이만한 크고 중요한 문제를 정식으로 공식화하여 논의할 기회 자체를 부정해 버렸다. 몇몇 국방부 관계자들만의 일은 아닐 텐데도 철저히 자신들의 일로만 한정해 버렸다.


야당이 이 문제에 대해 오히려 정부를 더 비판하고 나서는 이유야 충분히 이해한다. 빨갱이만 때려잡을 수 있으면 수십만의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것도 정당하다는 것이 바로 야당의 주장이다. 몇몇 빨치산을 때려잡기 위해서 제주도에서 주민의 거의 3분의 1을 학살한 것도 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야당들이다. 아무리 박근혜가 국정농단을 저질렀어도 빨갱이가 정권을 잡는 것보다는 몇 배 낫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한다. 사실이든 진실이든 전혀 상관없이 빨갱이를 때려잡는다는 결론만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 과정도 절차도 없다. 공식화된 자료나 근거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사드만 들여올 수 있으면 명령계통을 무시하고 월권을 저질렀어도 얼마든지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 많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 과정이나 근거들이 사실상 거의 남아있지 않다. 국정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다. 모든 것을 객관화 공식화하는가. 밀실에서 몇몇 개인들끼리 사유화하여 한정해버리는가.그런 기준에 따르면 국방부의 허위보고나 누락은 잘못일 수 없다.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그동안 전쟁이 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모르겠다.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을 속인다. 대통령에게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다. 그런 군대가 실제 있었다. 그러고보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구일본제국군이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군이라는 조직마저 사유화한다. 군의 계통이나 정보마저 모두 개인들이 사유화하여 유출시키지 않는다. 정작 정확한 지시를 내려야 할 지휘부에서 정보가 부족해서 오판을 저지르고 만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공약이고 구호였는지. 자신의 첫업무를 구두가 아닌 공식화된 문서로써 남기는 행위가 그리 신선하고 감격스러웠었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9년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냥 국정에 대한 두 정치집단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무위원이라는 자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공적인 업무와 그에 대한 책임과 역할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잇었는지. 계통을 통해 보고하지 않았다. 누락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허위보고를 했다. 그러나 언론보도가 있었고 그런 사전지식이 있었으므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딱 남은 국정과 관련한 자료들이 그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절대 저들을 - 그나마 합리적이라는 바른정당마저 도저히 정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다.


아무튼 과연 나라가 어디까지 썩어있었는가. 어떻게 근본도 없이 표류하고 있었는가. 내가 살고 있던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에 자괴감마저 든다. 그런 놈들이 아직도 야당이라며 오히려 큰소리칠 수 있는 현실도. 차라리 공포다. 아무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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