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옆집 남자가 늙은 어머니에게 발을 씻기는 것을 보았다. 돌아오자마자 대뜸 밥부터 달라더니 신발이며 옷까지 손하나 까딱 않고 어머니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 남자는 늙은 어머니를 부려먹는 불효막심한 패륜아인가.


이순신이 함대를 출동시켜 부산으로 오는 가토 기요마사를 요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거부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었고 한양으로 압송되어 모진 고문까지 당해야 했었다. 그래서 이순신이 조정의 명을 어기고 출전을 거부한 것은 사실이니 이순신이 받은 처벌 또한 정당했다 여겨야 하겠는가.


전해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효심이 지극해서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 옆집 남자를 보고 좀 배우라는 부모의 다그침에 몰래 가서 훔쳐보고는 그대로 따라했다가 오히려 더 혼만 났더라는 우스개다. 사실은 늙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무어라도 더 해주고 싶어 해서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일부러 어머니가 할 일을 만들어주었더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진정 하고 싶은, 진정 기쁘고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진짜 효심이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사실로만 판단한다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는 불효막심한 인간이 될 뿐이다.


바로 이것이 진실이다. 언론에게 지워진 책임이다. 사실은 누구나 볼 수 있다. 보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위학생들이 거리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진다. 시위학생들이 던진 돌과 화염병에 누군가의 아들일 젊은 전경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니까 시위학생들은 공권력에 도전하여 경찰까지 다치게 만든 폭도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 더 노골적으로 광주에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실제 군인들을 위해 쐈다고 해서 그들은 단지 국가에 반대한 폭도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이 왜 총을 들었고 군인에 맞서 총을 쏴야 했는가 이유를 살피지 않으면 결국 일베가 주장하는대로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래서 일베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팩트'다. 명백한 사실근거라는 뜻이다.


이번 새정부의 인사청문회와 관련해서 한겨레와 경향의 보도가 비열하다 못해 아에 추악하다고까지 여기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일단 형식은 위장전입이다. 실제 살지 않는데도 다른 곳으로 주소를 옮겨 놓았다. 하지만 각각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각자 다른 점이 있다. 그런데도 모두 뭉뚱그려 형태가 위장전입이니 모두 같은 위장전입이다. 학군을 유리하게 배정받기 위한 위장전입이 있고, 부동산 투기로 부당하게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한 위장전입이 있는데, 해외에서 근무하느라 국내에 연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주소를 빌린 것마저 그저 겉보기에 위장전입이니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어찌되었거나 내용 자체는 어김없는 사실이므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전 정부에서 문제가 되었던 위장전입과 이번 정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위장전입 역시 모두 같은 것이다. 이전 정부와 이번 정부의 인사문제 또한 모두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왜? 어떻게? 어째서? 무슨 이유로? 어떤 목적으로? 그래서 경과가 어떻고 결과는 무엇인가? 하긴 이제 그 세대도 말만 진보언론이지 내부에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뭐라도 되는 것처럼 문빠들더러 덤비라 했던 기자가 91학번이었던가? 바로 그해 대선이 치러지고 이듬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었다. 대놓고 학생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이던 시절도 지났고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운동에 대한 회의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90년대의 대학가였던 것이다. 그러니 군사독재정권이 어떤 식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진실을 왜곡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끔찍한 일인지 직접 겪어 보았을 리 없다. 당장 이명박근혜 정부에서만 해도 몇몇 사실들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진실을 왜곡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왔었는가. 그로부터 전혀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들은 지식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불의를 보고 부당함을 보고 분노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생각할 줄 모르는 인형과 같다.


그러나 사실이니까. 자신들은 사실만을 보도했으니까. 맘마이스던가? 팟캐스트의 진행자 하나가 그러더라. 언론의 본분은 권력에 대한 감시라고. 저 인간들이 왜 저 지랄인가 깨닫게 되었다. 사실은 더 심한 말을 쓰고 싶은데 차마 나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그렇게는 못하겠다. 그냥 염병이라고 하자.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어째서 언론이 하는가? 언론이 주인인가? 언론이 주권자인 것인가? 국민이 한다. 국민 자신이 한다. 권력의 부당한 지배에 신음하면서도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던 시절이라면 언론은 당연히 무지한 대중을 일깨우고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아직 자기가 이 사회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각조차 없다면 그것을 일깨우고 행동하도록 떠밀어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국민이, 아니 시민이 직접 나서서 최고권력자인 대통령마저 끌어내리고 난 뒤다. 언론의 역할이 아주 없지는 하겠지만 결국 권력을 직접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는 역할은 주권자인 국민 자신이 하는 것이다. 단지 효용과 필요에 의해 그 많은 역할을 언론에 위임했을 뿐이다. 언론의 역할은 앞서 언급한 전근대사회에서조차 결국 이 나라와 사회의 주인인 주권자 국민들이 직접 자신의 책임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그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최민희 전의원이 계속해서 팩트를 강조하는 동안에도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원래의 비루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사실 최민희 의원의 주장조차 엄밀히 따지면 상당한 오류가 있다. 팩트가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 진실이다. 위장전입이라는 사실이 아닌 그 안에 내포된 진실이어야 한다. 위장전입이라는 단어 뒤에 가려진 크고 작은 차이들을 알고 이해함으로써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감시도 견제도 비판도 다름아닌 국민이 한다. 그러고보면 한겨레와 경향 등 이른바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미디어들조차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인들에 문자로 항의하는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문빠들이 바로 보기는 봤다. 언론이 한다. 국민이 아닌 자신들 언론이 한다. 지난 촛불정국에서도 얼마나 아니꼽고 배가 아팠겠는가. 사실은 자기들이 다 했는데 그저 촛불 몇 번 들었다고 시민들이 그 권리를 주장하더니 전혀 엉뚱한 문재인까지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았다. 비로소 이해가 된다. 어쩌면 자신들을 향한 문빠들의 공격을 정부를 향한 자신들의 공격과 등치시키는지도 모르겠다. 문빠들이 공격했으므로 자신들도 문재인 정부를 공격한다. 그 치졸함은 정말 조선일보를 욕하던 것이 미안하게 여겨질 정도다.


정말 어기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진보언론이. 그래도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사실과 진실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진실의 보도라는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권력을 비판한다. 진실을 비틀어서라도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한다. 그것이 자신들의 책임이다. 언론에 진실이 없다. 그냥 아무데나 널려 있는 사실의 나열만이 있을 뿐이다. 그마저 고도로 의도된 왜곡된 진실을 그 안에 감추고 있다. 그저 위장전입으로만 끝났으면 모르겠는데 기사를 통해 교묘하게 그에 대한 판단까지 유도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정의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실패야 말로 정의다. 그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가치다. 적인 이유다.


어째서 한경오와 전쟁을 벌이는가? 아직 더 강한 적들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는데 어째서 그나마 우리편일 수 있는 한경오와 먼저 싸움을 벌이는가? 게임을 하는데 상대편이 동맹을 맺고 한꺼번에 쳐들어 온다. 삼국지 게임을 예로 들어 조조와 공주와 한복과 도겸과 원술이 함께 쳐들어온다. 그러면 누구부터 무찌르겠는가. 가장 가깝고 약한 공주부터 잡아야 한다. 괜히 조조와 먼저 싸우다가 뒤를 공격당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만만치 않은 조조인데 더 어려운 싸움이 될 수 있다. 초반에 압도적으로 가장 약한 적부터 순식간에 해치우고 적을 최대한 줄여 전선을 좁혀야 한다. 언론도 아니다. 80년 당시 조선일보가 보도한 방식 그대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데 쓰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을 인내하며 지켜봐주어야 하는 것인가.


언론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자격이 없는 언론이 부당하게 나를, 우리를, 내 정부를 공격한다. 다행히 그나마 만만한 적이다. 죽여야 한다. 거짓에 관용은 없다. 유일한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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