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TVN의 오디션프로그램 '슈퍼스타K'와 관련해서 악마의 편집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었다. 제작진의 악의적인 편집으로 인해 출연자인 예리밴드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 가해지고 그를 이유로 예리밴드가 무단으로 프로그램에서 이탈해버린 것이었다. 그때 이승철이 상황을 수습하면서 출연자들을 다독이며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는 공인이기에 대중의 껌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언제든 대중들에 씹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의 숙명이고 의무다.


물론 나는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주장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에게 위임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해서 무엇을 해달라 요구한 적도 없고 대가를 지불한 적도 없다. 어디서 뭔 짓을 하든 아예 관심이 없으면 나의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에 걸그룹인 '헬로비너스'의 멤버가 출연하는데 정작 나는 헬로비너스라는 걸그룹이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멤버가 누구이고 어떤 노래를 불렀는가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마디로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상당히 예쁘게 생겼다. 그것이 그동안 헬로비너스가 데뷔하고 활동해온 것에 대한 나 자신의 평가다.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까. 정확히 공인이라기보다는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매개로 한 공적인 대상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이승철의 말처럼 대중의 욕망과 기대를 투영하여 소비하기 위한 객체로서의 대상이다. 그래서 껌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하물며 공인이라기도 애매한 연예인인데도 이렇다.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개인의 사생활이야 당연히 보장해주어야 하더라도 배우로서, 혹은 가수로서 자신의 직능에 대한 평가나 비판, 조롱, 힐난, 심지어 상당한 수준의 모욕에 대해서까지도 자신을 소비해주는 대중에 대한 의무로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중이 자신을 소비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이상 대중이 상품으로서 자신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든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서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주권자로서 국민이 권한을 위임하여 대부분의 평범한 개인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고 강한 권력과 수많은 다양한 특권들을 부여받은 정치인들이다. 비단 선출직만이 아니다. 임명직도 결국 그들이 자신의 직분과 관련해 받고 누리는 모든 것이 국민이 낸 세금에서 나온다. 전혀 상관없는 사생활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 반찬으로 뭘 먹고 드라마는 무엇을 보는가 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것도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국회의원의 자격으로 정부의 요인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하는 자리인 것이다. 권한과 책임을 위임한 주권자로서 과연 자신이 선출한 대리인이 얼마나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지켜보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하다못해 근대 이전의 전제왕조에서조차 백성들이 별 상관도 없는 일들로도 얼마든지 절대권력자인 군주 자신을 비웃고 비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나랏님욕도 하는 것이다. 당장 자기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곳에서 백성들은 군주인 자신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어라 표현하고 있는가. 심지어 당연한 자연현상인 일식이나 월식마저도 모두 군주가 잘못한 탓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닭이 어떻게 울고 쥐가 새끼를 몇 마리 낳고 하는 것까지도 모두 군주가 잘못한 때문이라며 사서에 기록하기도 한다. 그것이 절대권력을 누리는 군주로서 치러야 하는 대가인 것이다. 그만큼 나라와 백성의 모든 부분을 두루 살피고 올바로 다스러야 할 책임이 군주들에게는 있는 것이다. 하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대리자인 국회의원들에게 조금 심한 표현의 문자를 보낸다 해서 그것이 무에 문제가 되는가.


그냥 개인이 아니다. 마치 2012년 겨울 스스로 자기 집 문을 닫아걸고 감금 아닌 감금을 당했었던 어느 국정원 여직원의 경우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내가 당시 그 여직원에 대해 이름이 아닌 단지 국정원 여직원이라 쓰는 이유는 한 가지다. 당시 민주당 당직자들이 선관위 직원과 기자들까지 동반해서 그 여직원의 집을 찾아간 것은 그녀 개인을 만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개인들이야 인터넷에서 무슨 글을 쓰고 어떤 댓글을 쓰든 어차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게시물과 댓글을 쓴 당사자가 국가기관인 국정원에 소속된 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헌법까지 위반해가며 국가기관인 국정원의 직원이 인터넷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며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었기에 강제력까지 동원해가며 그 여직원의 집 문을 열고 진입하려 시도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국가기관인 국정원에 고용된 공무원이라고 하는 공적 직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다수의 네티즌과 같은 한 여성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여성에 대한 무도한 폭력이고 인권유린이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특히 평소 똑똑하다고 자랑하던 이른바 인터넷 지식인들이 그런 헛논리에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래서 야권은 안되는구나.


마찬가지다. 그냥 개인 이언주가 아니다. 개인 이언주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가 하등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경대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자식들은 군대를 갔다 왔는지 내가 신경쓸 이유 또한 어디에도 없다.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자신을 대신하여 중요한 나라의 일을 처리해야 할 책임을 위임받은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위임받은 역할들을 잘 수행해내고 있는가.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욕한다. 잘하면 후원도 하고 못하면 가차없는 비판과 비난들을 쏟아낸다. 그러므로 욕듣기 싫으면 잘하라. 그런데 욕먹기는 싫다. 그러면 잘하면 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욕했다고 문자를 추적해서 처벌해야 한다는 발상은 어느 시대 사는 누구의 생각인가.


진보언론입네 하는 것들이 더욱 같잖아지는 이유다. 자기들도 당했다고 아주 꽁해 있다. 그러고보면 과연 언론은 단순히 사주의 사유재산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사주가 배타적으로 소유한 사기업이기에 사주 마음대로 기사를 써도 상관없다. 기사를 쓰는 것은 온전히 기자의 양심이고 책임이기에 어떤 기사를 쓰든 독자는 그에 대해 비판할 권리가 없다.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에 대해 구독을 거부할 권리조차 없다. 그래서 조중동과 그들 진보언론이 다른 것이 과연 무엇이던가. 자기들에게도 자기들만의 입장이 있으므로 독자들은 전혀 상관말라. 그저 자기들이 쓰는대로 읽기만 하라. 권력이다. 언론의 기사 하나에도 수많은 것이 바뀌고 뒤집히는 어쩌면 더 큰 권력이다. 독자인 대중은 그에 대해 어떤 감시도 견제도 비판도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냥 웃기는 것이다. 결국 한경오로 대변되는 진보언론의 속살이 그대로 대중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진보란 가치마저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이 전유하는 사유물이다. 언론으로서의 공적인 책임과 그에 대한 대중의 감시와 비판마저 철저히 무시한다.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질타와 비판을 거부하려 한다. 그것을 옹호하는 자칭 지식인들이 있다. 대한민국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다. 개인적으로 개떼처럼 몰려다니는 그런 꼬락서니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장 근본이고 본질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여튼 같잖다. 꼴값들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