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미 한 번 썼을 것이다. 유시민이 처음 어용진보지식인이 되겠다 선언했을 때 그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누군가의 편에서 그를 지키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차라리 비판하는 것은 쉽다. 백 가지 잘한 일을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한 가지 잘못한 것을 사람들 앞에서 지적하기란 너무 쉽다. 잘못된 비판에 대한 책임까지도 공공의 가치와 질서를 이유로 비판받는 상대에게 지워지는 경우가 상당하기에 아무런 부담도 책임도 느끼지 않고 마음껏 자기가 생각한대로 비판을 가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누군가의 편에서 누군가를 옹호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아마 한경오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지식인과 언론인들 모두 그 사실을 깨닫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작 비판의 대상이 된 다른 사람을 옹호하는 것만으로도 싸잡혀 자신까지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만다. 비판의 대상임을 알면서도 옹호했기에 그 비판의 책임까지 모조리 자신에게 돌아오고 만다. 이른바 노빠들에게는 벌써 참여정부 시절부터 치떨리도록 몸으로 겪어 온 사실이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부침에 따라 그에 대한 모든 비난과 비웃음과 조롱이 노빠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그나마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나고 겨우 한 줌도 안되는 정도만이 남아 어떻게든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지켜보겠다고 온통 피투성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도 필사적이던 모습을 기억한다. 노무현에 대한 평가나 노빠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것은 당시 실제 있었던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노빠에 이은 이른바 문빠들이 한경오를 경계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이유다.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 문재인정부를 지켜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정부이기 때문이다. 언론마저 대부분 등돌리고 외면하고 있을 때 지지자들끼리 똘똘 뭉쳐 어떻게든 끌어올리고 밀어올리며 필사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만든 자신들의 대통령이고 자신들의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정부를 위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노무현의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이 있었다. 노무현의 실패가 가져온 것은 결국 이명박과 박근혜의 퇴행정부였었다. 6.29이후 한 번도 멈추는 법 없이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역사가 다시 몇 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처참한 현실이었다. 노빠들과 달리 나는 노무현에 대한 부채의식같은 것은 없다. 다만 노무현의 실패로 인해 찾아온 이명박근혜의 퇴행정부에 대한 두려움은 가지고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도 문재인을 지지했고,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성공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지지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다른 것 없다. 혹시라도 문재인 정부를 좌절시키고 실패하게 만들 외부의 요소로부터 자발적으로 나서서 문재인 정부를 지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편에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문제인 정부가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라도 저지르게 된다면?


그런 모든 것까지 감안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 모든 부담을 미리 고려해가며 지지하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와 박근혜 정부를 지지했던 많은 지식인, 언론, 언론인들이 국민적인 비난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박근혜와 박근혜정부를 위헤 궤변까지 동원해가며 변호를 해주고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알면서도 자신이 진심으로 지지하는 대상이기에 그 책임까지 함께 나누어진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이나 비판이 가해지면 필경 지지자들 역시 그에 휩쓸리기 쉬울 것이다. 그에 비하면 비판하는 쪽은 공공의 가치와 이익을 명분으로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격을 가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임이다. 그런데 마침 한경오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면서 바로 그런 비판하는 쪽에 서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신들이 애써서 세운 자신들의 정부인데 정작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면서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려 하고 있다. 아예 지분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사태부터 일관되게 이들 언론들은 문재인과 민주당의 반대편에 있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차라리 조중동과 같다. 서로 지향하는 지점도 지지하는 대상도 다른 만큼 굳이 동지적 연대를 고려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비판하고 그 비판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한경오는 조중동과 같은 입장인가.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 아니 그 전부터도 한경오가 지금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라고는 거의라 해도 좋을 덩도로 없다. 그래놓고는 선거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자 가장 먼저 유리한 비판하는 위치를 선점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주된 독자층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앞으로도 그를 지키려 하는 지지자들이었다. 그래서 문재인 지지자들이 반발하며 구독을 철회하고 절독운동을 펼치지 거친 말들로 역시 지지자들을 향해서도 비판을 쏟아낸다. 어째서 자신들을 버리는가. 자신들을 외면하는가. 차라리 솔직해지면 좋다. 진보와 보수로 서로 지향도 성향도 다르지만 한경오 역시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지지자들과 가는 길이 다른 언론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지지자들이 절독을 하든 절독운동을 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도 아니면서 문재인 지지자들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한 편에서는 문재인을 비판하는 유리한 입장에 서려고 한다. 자신들이 만든 자신들의 정부도 아니다. 문재인 지지자들이 그들을 보는 눈이 불편해지는 이유다. 자신들은 지금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정권연장을 위해 이렇게 필사적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저들은 그저 편한대로 언론놀음이나 하고 있다.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진흙탕을 뒹굴며 몸을 내던질 각오로 비장한데 다른 한 쪽에서는 쉽고 편한 비판을 마치 당위처럼 사명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정권연장을 위해서 잠시 자신의 신념도 양심도 가치도 모두 내려놓을 각오까지 되어 있는데 언론으로써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금과옥조처럼 조금도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있었다. 자칫 저들이 잘못된 비판이라도 무책임하게 하게 된다면 정부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냥 한 마디로 자격도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을 누리려 해서라 여기면 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기여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는 언론들이 오히려 더 편하고 쉬운 위치에서 열매만 따먹으려 한다. 관용적인 민주화정부 아래에서 언론의 자유만을 마음껏 누리려 한다. 아주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본전생각이다. 지금까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까지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 문재인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 대해서까지도. 아무리 대단한 사회적 책임과 사명이라 할지라도 너희들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를 용납하지 않겠다.


언론의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비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금 이명박근혜의 퇴행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필수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나중도 있다. 다음도 있다.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듯 그 성공을 위해 직접 자신들이 나서려 한다. 고작 언론의 자유와 양심만을 챙기려 한다. 9년만에 민주화정부를 되찾은 자신들의 노력 위에 오로지 자기의 신념만을 놓아두려 한다. 내가 이만큼 노력하고 고생했는데. 앞으로도 그럴 텐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책임까지 어깨에 지고 있다. 자세가 다르다. 마음가짐이 다르다.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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