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썼는지 안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냥 생각나면 쓰는 타입이지 계산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뭘 쓰고 뭘 안 썼는가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튼 대선 동안에도 문재인이 유약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코웃음쳤던 이유가 있다. 인간은 원래 선한가? 아니면 원래 악한 것인가? 그보다는 결국 유혹에 약한 것이 아닐까? 욕망에 약해지고, 두려움에 약해지고, 인정에 약해지고...


60년대 일본에서 학생운동을 와해시킬 때 썼던 방법이 바로 가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가족을 동원해 인정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던 학생들을 가정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부모들도 말하지 않던가. 가족 생각해서라도 대학 들어가면 데모같은 건 해서는 안된다. 가족을 생각한다면 우병우 같은 인간이 진짜 잘하는 것이다. 욕이야 좀 먹겠지만 대신 막강한 부와 권력으로 가족을 지탱하지 않았는가.


서슬퍼렇던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정부에 반대하고 재벌과 맞서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킨다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이던가. 부산의 맹주이던 김영삼으로부터 정치 좀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도 노무현과 달리 끝까지 인권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홍은동의 고작 몇 억 짜리 빌라다. 나이를 생각하고 직업을 생각해보라. 그래도 변호사다. 아들 결혼하고 아파트 얻는데도 3억짜리인데 대출이 끼었다. 오죽하면 아들 연봉 3천만원도 안되는 자리 앉히겠다고 인사청탁을 했다는 의혹까지 있겠는가.


한 번이라도 가족에 미안한 적이 없었을까? 고생만 한 부모와 형제들, 그리고 변호사를 가장으로 두고도 풍족하지 않은 아내와 자식을 보면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적이 진짜 한 번도 없었을까? 그랬다면 그것대로 무서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 꺾이고 마는 지점이다. 김문수가 처음부터 처렇게 타락했던 것이 아니었다. 김지하가 변절 아닌 변절을 했을 때도 가족이 그 이유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굽힘 없이, 심지어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더욱 매몰차게 형제와 가족과 친구들을 대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약하다?


강하지 않은 자는 선할 수 없고 용감하지 않은 자는 정의로울 수 없다. 어딘가 기록된 말이 아닌 그냥 사실이다. 그냥 본성이 선해서가 아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한 의지를 포기하게 만드는 숱한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강한 의지가 있어야 인간은 마지막까지 선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정의롭기만 해서 정의롭다면 굳이 정의라는 말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정의롭고자 할 때는 그래야 하는 필연과 당위가 있기에 그러는 것이다. 불의와 맞서야 하고 악과도 싸워야 한다. 조금이라도 겁먹거나 두려워하게 된다면 더이상 무엇과도 맞서거나 싸우지 못하게 된다. 고문 몇 번에, 차가운 징역살이 몇 년에, 그리고 현실의 고단함 앞에서 끝내 꺾이고 굽히고 말았던 이야기가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일제강점기에도 한대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은 많았지만 끝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문재인을 신뢰하는 이유다.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사람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를 보내는 이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86세대들에게는 부채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 엄혹했던 시절을 스스로 희생해가며 뚫고 지나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마침내 세상이 바뀌게 되었다. 아주 최근까지도 그래서 김문수에 대해서는 크게 반감이 없었는데. 이재오에 대해서도 이번 대선출마가 차라리 서글플 지경이었다. 마지막까지, 그나마도 운명에 이끌려, 모두에게 등떠밀려 대통령이라고 하는 새로운 도전에 임하게 되었다. 과연 민주당 혁신과정을 지켜봤다면 그렇게 끝까지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버티고 지켜냈던 그 모습 어디에서 유약함을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인가.


착한 것은 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약해 보이는 것이다. 진짜 약한 사람은 혹시라도 자신의 선의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선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이기를 쫓으려는 사람들이다. 정의로운 것도 설사 모두가 옳다 여겨도 그것이 불의라면 불의라 말할 수 있는, 그리고 그와 싸울 수 있는 용기를 담보한다. 그래서 나는 결코 선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한다. 문재인은 커녕 변절한 김문수나 이재오만도 못하다. 그래서 우습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문재인더러 유약하다 말하는 것인가.


대통령이 되고 나니 더 확실해진다. 이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강한 의지와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유혹이 있을수록 두려움이 있을수록 더 강해지고 더 용감해지는 사람이다. 그를 약하게 만드는 것인 오히려 더 작고 더 약하고 더 선한 무엇인가다. 그런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다. 무서운 사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 밑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 보람은 있을지 몰라도 몸도 마음도 고단하다.


역사상 이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너무 나가는 것이라 차마 더 덧붙이지 못하겠다. 평생을 원칙만을 위해 살고 두려움과 맞서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다. 다만 끝은 달랐으면 좋겠다. 나는 해피엔드를 좋아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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