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나온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박종철? 물론 그것도 포함된다. 이한열? 그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도 잘나가고, 올림픽도 유치했고,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던 시절에 시위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들까지 거리로 나와 대학생들의 행렬에 합류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19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기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민이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라 이름지어진 선거인단의 대의원들 의해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되었었다. 물론 통일주체국민회의도 선거를 통해 뽑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공작과 술수와 책략들에 의해 거의가 여당지지성향의 인사들로만 채워진 어용선거인단이었다. 실제 체육관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대의원들이 추천하도록 되어 있는 대통령후보는 한 사람밖에 없었고 그나마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그런 식으로 1987년까지 이어지다가 다시 전두환이 기존의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으니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자기들 손으로 직접 뽑아야겠다. 민주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가만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내놓은 개헌안이라는 것을 보니 대통령은 그냥 이름 뿐이다. 통일, 국방, 외교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책임진다. 국회의원 과반이 추천하고 동의하여 임명한 총리에게 지금까지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권한 대부분을 부여한다. 무슨 말이겠는가. 차이라면 과거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과 여당에 의한 어용선거인단이었다면 지금의 국회는 각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자영업자들이라는 것이다. 그저 지역구만 잘 관리해서 국회의원 자리만 지키면 되는 인사들이 모여서 서로 합의라는 이름의 야합과 타협으로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질 사실상의 행정부 수반을 선출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각 정당들이 얼마나 유권자의 요구에 맞게 바른 정치를 펴왔던가.


간선제로의 회귀다. 더 나쁜 것은 그나마 청와대라고 하는 확실한 중심이 있었던 과거에 비해 자기 의석과 개인의 이익이 우선인 자영업자 국회의원들의 야합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될 가능성마저 있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말을 돌려준다. 그래서 박근혜보다 지금 국회의원이라는 것들이 더 나은게 무엇인가고. 박근혜에 부역하던 놈들이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인데 이제와서 자기들과는 상관없다는 듯 내각제를 통해 권력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여기에 야합하려는 국민의당이나 민주당의 일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다행이라면 아무리 국회의원들이 날뛰어봐야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으면 헌법개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게 통하리라 보는 것일까? 그러니까 저런 얼토당토않은 내용을 개헌안이라 내놓은 것이겠지만.


개헌에 반대하려면 주위에 한 마디만 해주면 된다. 이제 앞으로 행정부의 사실상 수반은 국민이 아닌 국회의원이 뽑게 된다. 당신이 지금 그토록 욕하는 썩어빠진 국회의원 개자식들이 앞으로 장관까지 임명하고 국정을 좌우하게 된다. 그것을 바라는가. 그리고 그 다수는 박근혜 당시 여당에 속해 있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 될 리가 없다. 된다면 그것이 대한민국의 수준일 뿐. 어이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