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런 생각을 했었을지 모른다. 대통령만 되면 된다.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로만 돌아갈 수 있으면 모든 것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자기가 청와대에서 내쫓기기 전, 평화롭던 그때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벌써 이렇게나 지나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나폴레옹이 폐위되고 루이18세가 프랑스의 왕위를 되찾은 뒤 그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샤를10세가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프랑스 국민들은 혁명을 통해 자유를 맛보았고 신분이 사라진 평등한 사회를 경험해 보았다. 아무리 샤를10세가 국왕의 권위로써 그런 요구들을 찍어누르려 해도 그것은 이미 대세였으며 당위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혁명이라는 대세를 인정함으로써 왕위를 안정시키려 했던 형 루이18세에 비해 결국 또다시 혁명에 의해 폐위당하는 처지가 되고 마는 것은 그같은 시대를 알지 못하고 거스르려 했던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왕이라지만 개인의 힘으로 어찌하기에는 그것은 이미 너무나 크고 거센 역사의 흐름이었다.


더 오래전 한고조 유방과 천하를 두고 다투었던 초패왕 항우 역시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이미 천하는 진에 의해 한 차례 통일된 뒤였다. 하나의 군주 아래 통일된 천하를 대부분의 백성과 지배층들이 현실로써 체험하고 난 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천하를 다시 나눠 놓았다. 나눠놓은 것도 모자라 한참 변방인 자기의 고향으로 바로 돌아가고 있었다. 누가 중국의 천하를 차지하는가의 싸움에서조차 원래 자신의 고향인 초나라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중국이라는 천하를 목표로 하나의 천하를 이루고자 싸운 유방에 비해 항우는 진나라 이전의 분열된 중국으로 되돌리고자 했을 뿐이었다. 자기가 왕위에 앉히고서도 이유없이 싸움부터 걸고 보는 아예 생각이라는 것이 없어 보이는 행보는 그래서 가능했다. 항우의 말은 맞다. 항우가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라 이미 시대는 항우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박정희 시대에는 통했었다. 뒤를 이은 전두환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전두환마저 1987년 시민들의 봉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을 넘어 죄인으로 처벌받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악이다. 그것은 이미 죄다. 당시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적폐로 여겨졌다. 그리고 김영삼부터 김대중, 노무현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을 그런 과거와 단절해가며 지나오고 있었다. 이명박까지는 어느 정도 그 반동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훨씬 영리하기도 했었다.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그런 행위들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마저 5년의 시간이 지나고 시계를 한참 이전인 3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대한민국 사회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노인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온 시대였으니. 그런 것이 옳다고 보고 듣고 배우며 때로 강요당하며 살아온 시절이었으니. 틀렸다면 자신들이 믿어 온 정의가 틀렸다는 뜻이 된다. 그것을 정의라 믿고 살아온 자신들의 과거의 시간들이 틀렸다는 뜻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면 그만큼 지나온 시간들에 더 집착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 똑같은 것이다. 청와대에서 강제로 내쫓기고 어째서 자신은 청와대에서 내쫓겼어야 했던 것인가. 어째서 자신은 자신의 집인 청와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인가. 외로울수록, 그리고 그런 생활이 억울할수록 과거는 기억 속에서 더욱 정당화되기 쉽다. 다시 좋았던 과거로 되돌리겠다. 쓸데없이 나이만 먹은 옛것들이 시대를 거슬러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합의된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시 좋았던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필 주위에 있는 것이 과거에 살고 있던 김기춘이었다. 최순실이라고 바뀐 현실에 대한 깊이있고 폭넓은 이해와 지식을 갖춘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럴 수 있는 인물이라면 우병우 뿐이었을 텐데, 그러나 우병우는 그런 것이야 어떻든 자기 이익만 챙기면 되는 인물이었다. 시대를 보지 못하고 자기 욕심만 앞세우는 세 사람이 과거로의 회귀를 강하게 염원하는 박근혜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는 그 의도대로 30년도 더 전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되는 듯 보였다. 심지어 보수언론인 조선일보마저 절대권력인 청와대를 거스르려 하기 전까지는.


정권을 잡기 전까지는 같은 편이었지만 조선일보 또한 그동안 민주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자라난 거대언론이었다. 청와대가 그러자고 한다고 마음대로 휘둘리는 과거의 조선일보가 아니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권력과 맞설 수 있었던 같은 종편인 JTBC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사주의 성향과 상관없이 돈이 되는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알았다. 사주의 이익과 상관없이 무엇이 시청자를 자신의 방송으로 끌어들이고 그것이 나중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것인가를 헤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더이상 과거와 같이 그런 언론에 족쇄를 채우고 재갈을 물릴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박근혜와 그 주위의 인물들은 30년 전 과거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21세기 민주화된 대한민국이었던 것이다. 잠시 반동으로 시계를 되돌릴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을 알았다면 최소한 조선일보를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을 적으로 돌리며 들불처럼 일어난 국민들의 저항과 맞닥뜨려야 했다.


아마 아직도 박근혜는 지금의 현실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자신은 탄핵을 당해야 하는가. 또 한 번 억울하게 청와대로부터 내쫓겨야만 하는 것인가. 김기춘은 모르겠지만 최순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순실과 장시호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그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래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전혀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앞으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문제가 되었다. 그로 인해 자신은 물론 자신의 뒤를 책임져주어야 할 박근혜마저 쫓겨나고 말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 박근혜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오히려 억울하다. 오히려 원통하기까지 하다. 이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원래 이래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비로소 대다수 국민들도 실제로 겪으며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막연하게 좋게 여겨왔던 과거의 유산에 대해서. 박정희의 독재와 그가 대한민국을 다루던 방식들에 대해서도. 지금 분노하는 박근혜의 모든 잘못들은 모두 박정희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박정희가 하던 그대로 그 딸이 똑같이 대통령이 되어 따라한 것 뿐이다. 최소한 당시의 박정희는 긍정하더라도 지금의 박근혜는 긍정할 수 없다. 앞으로의 박정희든 박근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보수정당에 대한 형편없는 지지는 그것을 말한다. 보수정당을 지지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청산해야 할 적폐들과는 다른 보수정당이어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박근혜와 똑같이 과거에 사로잡힌 늙은이들 밖에 없다.


박근혜가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박정희의 신화를 끝낼 것이라는 예언은 맞아떨어진 것 같다. 아니 아예 박정희 자체를 과거의 신화로써 박제해버리는 결과를 만들고 만 것이다. 과거의 박정희는 몰라도 21세기 현대에 박정희는 용납될 수 없다. 용납되어서도 안된다. 그나마 유일한 의의라 할 것이다. 박정희의 시대는 끝났다. 박정희의 방식은 이제 더이상 대한민국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 과연 박정희 이후 보수의 구심점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승만일까? 아니면 전두환일까? 그도 아니면 이명박일까? 보수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박정희와 박근혜를 완전히 버리지도 못한다. 신화에만 안주해 온 광신도들의 최후다. 신앙의 밖에서 현실과 마주했을 때 철저히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한 사람에 대한 탄핵이 아니다. 한국 보수가 믿어온 신화에 대한 종식선언이다. 한국 보수가 추구하며 지켜온 가치들에 대한 종결선언이었다. 하나의 시대가 영구히 신화로 박제된다. 오래전에 끝냈어야 할 일을 이제야 겨우 마무리짓는다. 통쾌한 이유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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