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말했지만 2012년까지만 해도 내게 문재인이란 그래도 박근혜나 안철수보다는 나은 대선후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박근혜의 집권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다른 선택의 여지따위 없이 무조건 지지해야만 하는 후보였다. 대선이 끝나고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당시 문재인에게 투표했던 48%의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도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의 지지율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으니까.


2015년 말까지도 문재인의 차기대선 지지율은 친노의 유산에 제 1야당의 유력정치인으로서 받는 상수적인 지지를 제외하면 그래서 그다지 확장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문재인을 비판하는 이들이 그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고 있었다. 과연 인간 문재인은 훌륭한데 정치인 문재인도 훌륭할 것인가. 더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는 오히려 뛰어난 인재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들과 비교해서도 차별점을 보여주어야 했었다. 물론 그러지 못했기에 때로 야권에서도 2등으로 밀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문재인은 지금처럼 대세가 되었을까?


첫째는 역시 당대표 출마였다. 내가 문재인을 다시보게 된 계기였다. 그전에도 세월호와 관련해서 유가족의 단식을 말리기 위해 함께 단식을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었지만 그래봐야 문재인이 개인이 괜찮은 것이었다. 개인이 선량하다고 정치인으로서도 선량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 증명해준다. 정치인의 선의는 오로지 보다 집요하고 치열한 권력의지에서 비롯된다. 얼마나 더 지독하게 권력을 탐하고 갈망하는가. 무엇을 위해 권력을 가지려 하고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그래서 당시까지 정치인으로서 문재인이 가진 가장 큰 단점으로 바로 그같은 권력의지의 부재, 혹은 결여가 지적되고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반드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집념이나 오기 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바뀌었다. 그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오던 박지원과 대립하면서까지 자신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가 되어서 당을 바꿔야만 하겠다. 2012년 대선이 지지자들에 의해 등떠밀려 나온 것이라면 2015년의 당대표선거는 순전히 문재인 개인의 의지였다.


그리고 둘째가 당대표가 되고 자신이 공약한대로 고집스럽게 혁신안을 추진하고 통과시킨 것이었다. 솔직히 믿지 않았다. 아마 유시민도 상당히 의심스런 눈으로 보고 있었을 것이다. 저 당이 혁신이 될 수 있는 당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혁신안이 나와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다. 그동안 수도없이 정당을 개혁해보겠다며 외부인사들을 영입해서 그때마다 제법 훌륭한 혁신안도 만들어내고 했었지만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던가. 심지어 정당개혁을 명분으로 만들어진 열린우리당마저 당을 만든 주체들에 의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개혁마저 거부했던 이들과 다시 손을 잡고 만든 정당이 대통합민주신당이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이었다. 그런데 가능할까? 아니나다를까 안철수를 앞세워 혁신안을 흔들어대는 이름만 비주류지 사실상 주류인 인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도 똑같겠구나. 하지만 아니었다.


심지어 언론까지 가세하고 있었다. 이름만 비주류인 주류들의 탈당협박에 분열은 안된다면서 친야권성향의 언론들마저 여론을 움직여 문재인을 압박하고 있었다. 혁신보다는 통합이 중요하다. 독선보다는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내가 한겨레와 경향 등 친야권성향의 언론에 대해 결정적으로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였다. 분명 잘못하고 있는 것은 분열을 인질삼아 혁신을 막으려 하는 그들 비주류일텐데 어째서 그 책임까지 모두 문재인에게 돌리고 있는 것일까? 그토록 분열을 막아야 한다면 정당정치를 바꾸기 위한 문재인의 혁신을 담합하여 막으려 하는 저들에게 먼저 경고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수언론까지 하나가 되어 문재인과 친노에 모든 책임을 지웠고 그 결과 문재인의 지지율은 친노와 1야당 대표에 대한 지지의 하한이라 할 수 있는 10%중반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자칫 이대로라면 문재인의 정치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지지층이 결집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과연 문재인은 끝까지 저같은 전방위적인 저항과 반발에도 혁신안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지켜냈다. 혁신안 뿐만 아니라 그동안 모두가 자신만 공격하는 사이 아무도 모르게 준비한 인재영입을 통해 당의 체질은 물론 이미지까지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열린우리당 이래 1야당에 대해 자기가 한 말도 제대로 지킬 줄 모르는 새누리당의 열화버전으로 여기던 나같은 사람마저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다만 워낙 그동안 당한 게 많아서 당시까지도 당원가입은 미뤄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은 위기에 빠진 문재인과 1야당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어느새 그들의 지지자가 되어 입당러시를 이루게 되었다. 원래 문재인의 지지자도 있었고 혹은 그 과정에서 문재인의 지지자가 되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존재로 인해 문재인은 당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당의 주도권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은 경쟁자들이 문재인의 패권을 비난하며 당원을 당정에서 배제하려 노력하는 이유였다. 민주당의 지지자는 문재인의 지지자다.


세번째가 바로 자기가 그토록 많은 어려움을 견디며 지켜낸 혁신안이 통과되는 시점에 맞춰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이었다. 더구나 상당히 성향이 다른 김종인을 자신을 대신해 영입하고 있었다. 사실은 원래 비주류가 잔류의 조건으로 김종인을 천거한 것이었지만 우습게도 형식상 문재인이 영입한 것이 되었기에 김종인 영입에 대한 모든 공과 과가 문재인 한 사람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덕분에 김종인이 비대위원장이 되어 깽판을 칠 때는 나같은 경우 그를 영입한 문재인까지 싸잡아 비난하고는 했었다. 어찌되었거나 문재인이 영입하여 비대위원장에 앉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심없이 당의 통합과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희생하는 리더를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결국 김종인이 어깃장을 놓으며 당이 흔들리게 되었을 때는 문재인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당의 통합과 승리를 위해 필요하기에 굳이 뒤로 물러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과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리더란 어떤 사람일까? 답은 분명하다.


마지막이 총선 과정에서 백의종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비며 당이 아닌 야권의 승리를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그저 총선의 승리만을 위해 비대위를 장악하고 있는 비주류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야말로 남김없이 불태웠다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재인이 보여준 야권은 물론 유권자들에 대한 영향력 역시 언론이 그동안 보여주지 않던 것이었다. 모두가 친노패권이 문제다 문재인의 무능이 문제다 비판만 했지 국민들에게 문재인이란 어떤 이미지인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한겨레 경향만 읽고 있으면 문재인은 친노나 좋아하는 한계가 뚜렷한 정치인에 지나지 않았다. 문재인이 총선에서 야권의 승리와 무엇보다 민주당이 전국정당으로서 1당에 올라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그야말로 문재인이 야권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고 있었다. 안철수는 그 사이 문재인을 비난하는 보수언론과 입을 맞추며 민주당과 문재인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였다.


한 마디로 이길 수 있는 정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길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 이기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리더의 자격이다. 리더란 이기는 사람이다.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능력이나 도덕성은 그 다음이다. 이기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만이 오로지 리더를 리더이게 만든다. 이재명과 안희정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당장은 문재인을 이길 수 없는 이유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아무리 문재인만을 목표로 공격을 퍼부어도 전혀 효과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사람만 좋은 유약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착하고 성실하기만 한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다. 이재명이 착각한 것이다. 말하는 것이 어눌하니 토론만 시작하면 문재인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이 혁신안을 지키며 반대자들과 싸워온 과정은 그저 스튜디오에서 사이좋게 말로 공박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을 견뎌냈는데 고작 말로 싸우는 토론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짜가 아니다. 노무현의 유산만도 아니다. 노무현의 유산만으로 대통령후보가 되었다면 내가 굳이 이런 긴 글을 써가며 문재인을 지지한다 말하지 않는다. 나는 노무현을 싫어한다. 인간 노무현은 몰라도 대통령 노무현은 지독히도 싫어한다. 이른바 노빠라 불리우는 친노 지지자들도 싫어한다. 아주 귀찮고 성가시다. 내가 문재인에 대해 쓰는 것이 굉장한 수고인 이유다. 문재인에 대해 쓰면 반드시 노빠들이 몰려든다. 노빠들에게 세상은 아군과 적 뿐이다. 중간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맞춰 생각하고 글을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모두가 문재인의 능력이다. 문재인 스스로 쟁취한 것이다. 2015년 재작년 더민주 당대표 출마부터 지금까지 문재인 자신이 행동으로서 유권자를 설득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추문이 드러나면서 무엇이 진짜인가를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지금 대안은 문재인밖에 없다. 최고는 아닐지라도 문재인만이 최선이다.


결과적으로 재작년 새정연 대표출마부터 작년 총선승리까지 1년 반 남짓한 시간이 결정적이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은 타이밍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그토록 지지자들을 배부르게 만들던 야권의 유력대선후보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고 이제 이재명과 안희정만 남았다. 둘이 합해야 문재인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그들은 그렇지 못하게 만든 것일까.


하나하나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꽤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결코 버텨내지 못했다. 저렇게 결정적인 순간마다 필요한 결정과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사방이 적이었다. 아군이란 없는 듯 보였다. 그 아군을 만들어낸 것이 문재인 자신의 선택이며 역량인 것이다. 자신감이 붙었다. 최근 문재인을 보며 느끼는 것이다. 무엇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가 알게 된 듯하다. 희망을 갖는다. 역시 사람이 희망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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