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비유는 아주 타당하다. 비행기가 날아오르려면 활주로가 있어야 한다. 물론 수직이착륙기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수직이착륙기는 활주하는 경우보다 속도나 고도 등에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하긴 아니라면 굳이 활주로가 필요한 비행기를 비싼 돈 들여 만들 이유가 없다.


이재명의 지적처럼 문재인은 처음부터 자기 힘으로 날아오른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이라고 하는 이름에 견인되어 자기가 결정하기도 전부터 지지자들에 의해 활주로로 떠밀려 온 경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2000년대 초반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을 했었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을 터였다. 더구나 2012년 대선에서 역대 최다득표의 패배를 기록한 뒤에도 끊임없이 뉴스의 중심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을 테니 거의 5년 넘게 활주는 커녕 이미 비행에 들어가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런 상대를 불과 수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따라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짜 어이없는 것이 바로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일 것이다. 오히려 2012년에는 안철수가 한 걸음 앞서 있었다. 대중의 정치불신과 혐오의 감정에 힘입어, 더구나 미디어가 만들어준 이미지를 등에 업고 한껏 떠올라 한때는 박근혜마저 위협하는 위치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똑같이 5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단일화 이후 대선패배라는 과오가 있었으니 출발 자체는 오히려 안철수가 더 유리한 조건이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문재인이 뒤로 물러나 있는 동안 안철수는 무려 제 1야당의 당대표까지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안철수에게는 무엇이 남았는가.


문재인이라고 사실 항상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차기대선후보로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도 거의 작년부터였을 것이다. 그 전에는 여당에는 김무성이 있었고, 야권에는 안철수와 박원순 등이 있었다. 이들보다 항상 앞서지도 못했다. 오히려 뒤지는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정석만을 밟아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2015년 문재인이 주도했고 끝끝내 지켜냈던 혁신안과 그를 기반으로 치루어낸 2016년의 총선이었다. 더구나 아무 당직도 없이 오로지 선거의 승리만을 목표로 홀로 전국을 누볐던 것이 지지자와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반면 문재인이 승부를 걸고 있던 그 순간 안철수는 단지 문재인만을 바라보며 그의 발목을 잡으려다 제풀에 자빠지고 말았다. 안철수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보다 문재인의 이름에 흠집내려는 행동이 오히려 자신을 몰락시키고 만 것이다.


아무튼 야권의 차기대선주자로 유력했던 박원순과 이재명, 안희정이 나란히 오히려 야권지지자들에게 애물단지 취급당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충분한 기회를 가지고 벌써 유력대선주자 - 아니 차라리 차기대통령확정자로 여겨지는 문재인을 따라잡으려니 아무래도 자꾸 무리수를 두게 된다. 이번 아니면 기회가 없다 여기고 달려들다 보니 마음은 급해지고 손발이 꼬이기 시작한다. 문재인의 5년을 불과 몇 달 만에 따라잡으려 한 부작용이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신을 드러냈더라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대통령을 앞에 두고 다음을 기약한다면 정치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조그만 가능성이 보여도 반드시 그것을 부여잡고자 노력할 때만이 정치인이라 불리는 것이다.


여러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재명, 안희정, 심지어 박원순에 대해서조차 그다지 크게 실망한다거나 기대를 거둔다거나 하지 않는 이유다. 어떻게든 경선에서 이겨야 한다. 경선에서 이겨 대선후보가 된 뒤 본선을 통해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정치인이 되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욕망이란 것이 있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오히려 본능과 충동이다. 충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고 그리고 여전히 기대할만한 야권의 인재들이다. 한 번의 실수나 잘못은 원래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의 탄핵이 독이 되었다. 그리고 여권이 지리멸렬한 상황이 혼란을 부추기고 말았다. 경선에서 대선까지의 기간이 너무 짧다. 그런데 여권의 지리멸렬로 말미암에 뜻하지 않게 야권에서 몇몇 이름들이 갑작스럽게 대두되었다. 대안없는 여권의 지지가 이들에게 향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너무 길었던 5년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문재인에 대한 비토가 그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판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려면 그만큼 비일상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구나 한때 잘못을 한다. 오판을 하고 실수도 저지른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나쁜 것은 그 다음이다. 경선까지는 그냥 봐준다. 과연 경선이 끝나고 그들은 자신의 패배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지지자를 탓하지는 않는다. 원래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당장 문재인 지지자들만 하더라도 곳곳에서 보통 사람 신경거슬리게 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것 일일이 신경쓰다가는 정치고 뭐고 걍 손 놔버린다. 노무현 때도 사실 노무현보다는 노무현 지지자들이 더 싫어 관심을 놓았었다. 노무현의 정책 자체가 그다지 지지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던 탓도 물론 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는 없었으니.


아무튼 선거때야 원래 과열되고 하는 것이니 감정이 시키는대로 행동해도 문제느 아닐 것이다. 좋은 놈은 좋은 거고 싫은 거다. 아니다 싶으면 아닌 거다. 하지만 싸움이 끝나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는 과연 당사자들도 그럴 수 있을 것인가이겠지만 말이다.


처음부터 불리한 선거였다. 거의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내가 이재명과 안희정, 박원순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 이유다. 박원순에게도 기회는 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다만 그 사긴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자신에게 달린 몫이다. 다음 5년을 본다. 상관없는 일이니. 여유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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