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그럴 수 있는 수단부터 갖춰야 한다. 장사를 하려면 가게가 있어야 하고, 소설을 쓰려면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가 먼저 떠올라야 한다. 공동체의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려면 먼저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야 한다. 그래서 권력의지다. 결핍과 결여에 대한 보상이며 매우 강력한 성취동기다. 반드시 내가 권력을 가져야겠다.


정치인이란 바로 그 권력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유야 여러가지다. 그냥 높은 자리가 좋아서 그러는 사람도 있을 테고, 권력이 있으면 돈과 여자가 따르니 그것을 바라고 권력을 가지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무언가 간절히 이루고픈 일이 있어서 권력이라는 요긴한 수단을 가지고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권력을 가져야 한다. 권력이 있는 자리에 올라서야 한다. 시의원이 되고, 지자체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마침내는 대통령까지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없으면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국정에 직접 깊숙이 폭넓게 개입할 수 있는 내각제라는 수단으로 바꿔 보는 것도 좋다.


다른 사람이 아니다. 바로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 하긴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면 굳이 자기가 정치인이 될 필요가 없다. 남이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으면 그냥 지지자로 남으면 된다. 문재인이 그래서 노무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정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노무현이 죽고 나서도 유시민이 여전히 정치일선에 남아 있는 동안은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제는 문재인이 직접 나서야 한다. 아직 안희정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이광재는 한동안 정치를 할 수 없으며, 그 밖의 친노라 분류되는 정치인들은 대중에 낯설기만 하다. 그럼에도 세월호라는 계기를 만나기 전까지 문재인에게 권력에 대한 열망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반드시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각오란 아직 너무 부족하기만 했다. 그래서 당시 문재인에 대한 평가 역시 권력의지가 너무 부족한 것을 가장 큰 약점으로 꼽고 있었다. 사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꼴이 나고 말 것이다.


내가 2012년 문재인을 지지했으면서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출마할 때까지 그를 미덥지 않아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도대체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정치인으로서 검증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안철수에 대한 평가라고 좋았을까. 그런 평가가 바뀌게 된 계기도 바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출마하면서 어느때보다 강하게 자신의 권력의지를 드러낸 그 순간이었다. 바로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그토록 안희정을 비토하는 가운데 오히려 안희정에 대한 기대를 키우는 이유와 정확히 같다. 바로 그런 모습에서 안희정의 권력의지를 보게 된다.


사실 작년 중반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할 뜻을 비추면서 단지 카운터파트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인터뷰를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어차피 문재인이나 안희정이나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가고자 하는 방향도 같고 가고 있는 길도 대개는 일치한다. 그런데 과연 안희정이 벌써부터 문희정과 살을 베고 뼈를 깎는 진검승부를 벌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문재인이 먼저 대통령이 되고 그 다음에 안희정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한 눈에도 가장 유리한 구도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이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문재인 정부 아래서 안희정도 자신의 입지를 더 넓힐 수 있다. 문재인의 자산을 물려받아 보다 수월하게 다음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건 진짜다. 진짜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가. 문재인이 아닌 안희정 자신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필연이 안희정에게는 있었다. 그를 위해서 지지자들이 등돌릴 것을 알면서도 문재인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중원이 아닌 외곽을 공략하고 나선다. 진심이든 아니든 어차피 경선에서는 같은 한 표일테니 그들의 표를 구하려 발벗고 나서기 시작한다. 순순히 민주당 대통령후보 자리를 내주지는 않겠다. 마지막까지 물고늘어져 자신을 위한 틈을 만들고야 말겠다. 무엇이 그리 간절하고 절박한지는 안희정 자신만이 알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인터뷰에서 진정 안희정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동의는 못하지만 일정부분 인정하고 존중한다.


승부에서 지더라도 잘싸웠으면 만족하는 것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것이다. 프로라면 패배를 억울해야 한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만 한다. 들키지만 않으면 반칙도 괜찮다. 당장 승부에 영향만 주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비겁하고 교활한 수단도 쓸 수 있어야 한다. 혼자 몸이 아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위해 비싼 돈을 치르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있다. 그들을 배신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자신을 이기게 하고 뜻을 이룰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안희정의 모든 무리한 말과 행동들을 그렇게 이해한다. 선의로 패하는 싸움을 바라지 않는다. 잘 싸우고 지는 싸움을 굳이 나서서 할 이유는 없다. 이겨야 한다. 어떻게든 이겨서 대통령후보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다. 그를 위한 최선만을 선택한다. 문재인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최선이다. 나머지는 이기고 나서 생각한다. 그것이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 사는 방법이다. 정치인 안희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여기에 간절히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정치인 안희정이 있다. 그런 나 안희정에 한 표를 투자해 달라.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문재인도 방심같은 것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워낙 일찍부터 선두이다 보니 정작 여러가지 족쇄며 올가미들이 그의 행동을 제약해 버렸다. 섣부르게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유리할 때는 변수를 줄이고 불리할 때는 변수를 늘려야 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문재인이 만든 선거판을 자신을 위한 기회로 만든다. 안희정이라는 정치인을 새삼 다시 보게 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길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고 있다.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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