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진영논리로만 보자면 친노는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다. 정치인들이야 어차피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으니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언론까지, 그리고 말하기 좋아하는 상당한 수의 지식인들마저 이때만큼은 서로의 이념이나 지향을 넘어서 한 목소리가 되어 친노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드러낸다. 친노는 안된다. 친노여서는 절대 안된다. 그같은 극단의 감정의 논리는 처음 노무현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아 정계에 입문한 문재인에게 가장 큰 한계이자 장애로 작용하고 있었다. 친노로는 절대 확장성을 기대할 수 없다. 아직도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뭐냐면 동교동계가 지금 지리멸렬한 이유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집권을 해봤다. 직접 책임지고 나라의 일을 이끌어 봤다. 착오게 눈에 띈다. 실수나 잘못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 그와는 다른 선택을 했어야만 했다. 그에 비하면 동교동과 친노를 제외한 나머지 이른바 야권으로 분류되는 세력들은 그런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당시 정작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마음대로 하던 정동영계나 역시 당에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목소리를 키우던 민평련계의 경우 그때에도 여전히 스스로 야당이기를 자처하고 있었다. 국정의 책임을 청와대와 나누기보다 청와대를 비판하며 책임을 비껴가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참여정부의 실패에 대해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그 가운데서도 최대계파이던 정동영계나 그 다음이던 민평련계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민노당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보수가 진보에 비해 정치적으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나마 한국사회의 경우 민주주의의 역사 자체가 너무 짧아서 실제 정권을 잡아본 정파 자체가 보수정당을 제외하고는 말했듯 동교동계와 친노 정도가 전부일 정도다. 보수야 어차피 지금까지 해오던대로 그냥 내버려두기만 해도 된다. 그래서 보수다. 민간인을 사찰하고,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국가기관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개인의 삶마저 억압하고 강제하려 한다. 심지어 부정과 비리를 저지러 막대한 뒷돈까지 챙겼다. 하지만 지지율에 변화가 없다. 그래서 최순실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최순실도 상관없다고 대통령과 현정부를 지지하는 유권자도 상당하다. 어차피 군사독재정권에서 늘 해오던 일상적인 일들이었고 그들은 그런 과거의 정부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금처럼만 계속된다면 문제없이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진보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물론 민주당이 진보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정책들은 분명 보수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런 대부분의 정책들은 역시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이다. 그래서 진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정책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의도가 있는 한 그들은 진보일 수 있다. 문제는 이미 지나온 길은 눈에 보이는데 앞으로 가게 될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직접 자기 발로 딛고 걸어온 길은 보이는데 파으로 자기가 딛고 걸어야 할 길은 아직 흐릿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서로 입장이 갈리는 것이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길은 하나인 것 같은데 정작 저마다 가려는 길이 다르다. 어느 길이 옳은가는 결국 실제로 직접 가보고 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눈에 이미 어떤 길을 어떻게 지나왔는가 선명하게 보이는 다른 이들이란 어떤 식으로 여겨지겠는가. 자기의 선택에 확신을 가질수록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그들에 대한 비웃음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은 잘못된 길이다.


그것을 더욱 확인시켜주어야만 한다. 저들이 가고자 했던 길로는 안된다. 저들이 가고자  했던 길은 틀린 길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로 모두는 가야만 한다. 실패를 과장한다. 실수나 착오를 극단화한다. 하지만 어차피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에 독단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수도 적고 힘도 미약한 소수의 의견이라도 충분히 듣고 대화를 통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해야만 한다.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미친놈이 되어서는 안된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관습이;나 관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굴종이고 야합이며 타락이다. 마치 내가 지금 당장 그만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이루어낼 수 있을 것처럼. 그러므로 다음 대안은 자신들이다.


참여정부는 보수정권이었다. 문재인도 보수정치인이다. 그것은 낙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보가 필요하다. 새로운 진짜 진보가 필요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참여정부는 급진적이었다. 노무현은 극단적이었다. 중용이 필요하다. 안정과 조화가 필요하다. 아무튼 참여정부가 실패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는 드러나게 된다. 참여정부의 실패와 잘못들 사이에 자신들이 권력을 가져야만 하는 당위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저들을 대신해서 저들의 자리를 차지하겠다. 정치적으로 지극히 당연하다. 저들은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내게 기회를 달라.


진보라고 다 같지는 않다. 서로 길도 다르고 결도 다르다. 그만큼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함께 같은 목적을 가지고 행동했던 동지이기도 했었다. 상당한 수의 동지들이 노무현에 포섭되어 친노의 길을 걸었다. 차이라면 그럼에도 대안이 있는가 없는가. 비판하면서도 합당한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는가 없는가. 아무 목적도 대안도 없는 그냥 공격이 아니다. 이재명과 안희정이 대선후보경선을 앞두고 문재인만을 집중해서 공격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저들의 대신이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다만 너무 해묵은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점이 많이 아쉬울 뿐.


한때 동지이기도 했었다.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행동해온 동지들이기도 했었다. 가는 길이 달라졌다. 그 길의 차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재인의 책임이 무겁다. 어찌되었든 문재인 정권의 치적은 친노의 연장에 있게 된다. 노무현정부에 대한 평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도 내려진다. 다른 야권의 정파들에게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자신들은 과연 실패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여전히 실패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이해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친노가 망해야 내가 산다. 더없이 원초적이고 솔직하다. 친노를 밟고서야 야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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