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는 불인하다 말한 바 있었다. 인仁이란 곧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으로 해량할 수 없는 의지가 깃들어 오히려 마음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어느날 전혀 의도치 않게 고양이와 동거하게 되면서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나와 함께 하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나와 전혀 별개로 존재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의도는 아랑곳없이 고양이는 고양이 나름의 방식으로 오늘도 살아간다. 받아들이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고양이를 버리게 되더라도 고양이는 결국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사람은 아닐까?


쉽게 착각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혹은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다. 자신의 인지가 닿는 범위까지 결국 인식하게 된다. 의식하게 된다. 그 연장에서 인지를 넘어선 미지를 인식하고 의식한다. 모든 것이 나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의 논리와 의도가 모든 것과 상호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가 내리는 것도, 바람이 부는 것도, 태풍이 불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우주에서 신성이 폭발하고 유성이 떨어지는 것까지. 오히려 오래전에는 그런 것이 더 당연했다. 일상을 벗어난 현상에는 분명 어떤 중대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나무를 심겠다고 땅을 파는데 정작 그 땅에 살고 있던 개미에게까지 그같은 의도가 전해질 것인가. 인간은 나무를 심지만 개미에게는 그저 살던 집이 어느날 느닷없이 부서지는 재앙이 닥쳤을 뿐이다. 인간이 나무를 심은 것이지만 살던 집이 부서진 자리에 난데없는 나무가 자라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어떤 의지도 의도도 개미를 위해 있지 않다. 개미에게 닿아 있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개미에게 무심한 것이다. 설사 집을 잃고 헤매는 개미들이 불쌍하다고 구해주려 하면 그 마음은 개미에게 닿을 수 있을까.


인간은 작다. 그리고 무지하다. 무능력하다. 당장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이미 존재한다. 그것마저 모두 이해하려는 것은 오만이고 만용이다. 사실 거기서 모든 문제들이일어난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억지로 이해한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데 스스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고 만다. 비틀린 인과를 억지로 끼워맞춘다. 이를테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넘치면 자르고, 모자르면 늘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고통받고 희생당하더라도 자기의 직관에 딱 들어맞는 결과가 아름답다. 인간이 세계를 파괴하게 되는 이유다.


그냥 존재한다. 그냥 일어난다. 그래서 알 수 있는 만큼만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한다. 동양과 서양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였다. 신은 해량할 수 없다. 신의 의지를 계량할 수 없다. 그래서 신은 신의 것으로 내버려둔다. 인간의 인지와 의지가 부족함을 인정한다. 무모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까지 억지로 이해하려 허구의 개념들을 만든다.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안주하게 된다. 천지는 무심하다. 자연에는 인간의 정이나 마음이 없다. 무심하게 그저 별개의 독립된 존재로서 받아들인다. 과학의 시작이다. 현상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어째서 진화론이 그토록 어려운가. 진화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많은 경우가 결국 인간의 존엄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이것은 별개다. 존엄하다고 반드시 필연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존엄과 인과 역시 단지 별개로서 존재한다. 다른 과학의 분야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인간을 위해 있지 않다. 과학은 오로지 과학으로서만 존재한다.


어느날 사고가 일어난다. 전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고, 누구도 잘못하거나 실수하지 않았다. 누구도 원인이 아니었고 책임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났다. 이미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신은 필요하다. 아무라도 아무것이라도 대답은 필요하다. 답을 구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간은 너무 가혹하다.


어쩌면 이것이 부처가 말한 입멸인지도 모르겠다.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이다. 자신은 독립된 유일한 주체이며 객체다. 주체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자신은 객체가 된다.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인과는 단지 우연일 뿐이다. 누구로부터도 무엇으로부터도 비롯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조차 우주에 비하면 너무 짧다. 인간의 삶에 있어 천 년도 아득하게 긴데, 지구의 시간으로는 백만년도 너무 짧다. 우주의 시간으로는 수억년은 거의 금방이다. 수백억년의 시간 속에서 고작 수십년이다. 차라리 막막함을 느낀다. 무모하며 무지하다. 그냥 받아들인다. 그냥. 어쩔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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