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란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란 이성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인간에게는 뜨거운 가슴이라는 것이 있다. 잘못된 것에 분노한다. 부정한 것을 바로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을 차가운 이성과 이어주는 것이 바로 머리가 하는 일이다.


포퓰리스트가 달리 포퓰리스트가 아니다. 단지 대중의 감정에 영합하려 하기에 포퓰리스트다. 흔히 사이다라 말한다. 대중이 분노해 있을 때 그 분노에 편승하는 말을 하여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오히려 한 발 더 나가서 증오로써 그 분노에 불을 지핀다. 냉철하게 머리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그렇게 일부러 몰아가려 한다. 대중의 감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대중의 거대한 분노와 나아가 증오를 직설적으로 전해주는 사람도 한 사람 쯤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짜 리더라면 그 상황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서 조금 더 낮은 온도에서 분노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분노를 어떻게 올바로 이끌 것인가. 분노를 해소하여 정상으로 되돌릴 것인가. 차라리 대중을 거스르더라도 그것이 옳다면 그래야 한다.


히틀러가 독일국민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무솔리니도 마찬가지였다. 증오를 말한다. 싫은 놈을 말하고 미운 놈을 말하며 내가 그 증오를 해결해주겠다 약속한다. 민주주의의 함정이다. 대중은 아무래도 이성보다는 감정에 취약하다. 그래서 더욱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 가장 분노해 있을 때 가장 냉정해져 있다.


현재 이른바 대선후보군 가운데 유독 문재인과 안희정이 눈에 띄는 이유일 것이다. 오히려 분노가 크면 그들이 더 크다. 증오가 크다면 그들의 증오가 더 클 터다. 가장 아끼던 친구이자 동지이자 리더를 잃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냉정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 법에 따라, 절차에 따라, 그리고 당사자의 존엄과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며. 이것은 정의이지 복수가 아니다.


처벌은 복수로써 하는 것이 아니다. 복수가 아닌 정의다. 정의의 실현이다. 정의란 이성이다. 한 마디 한 마디 곱씹어 정제하여 내뱉는다. 답답할 수는 있어도 그 말들이 옳다. 들끓던 머리가 조금은 차가워지게 된다. 누구에게 진정 리더의 자격이 있는가.


하긴 그만한 지지율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직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머리로 올라서지 못했다. 대중의 감정에 편승하여 머리로 올라서려 한다. 입장의 차이다. 정치는 기술이며 전략이다. 기술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입장이 다를 뿐이다. 새삼 확인한다. 문재인은 리더의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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