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공화라는 말 자체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었다. 그보다는 대동이라는 말이 더 흔히 쓰였다. 천지만물은 지배자의 소유인가. 아니면 천지만물 그 자체의 소유인가. 권력이란 원래 소유를 뜻하는 말이었다.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권력 아래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권력이 자기 소유의 천하를 잘못 간수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도 여전히 천하는 권력의 의지에 의해 망가져야 하는 것인가.


원래 공자가 말한 군자(君子)란 왕을 뜻하는 것이었다. 오롯한 지배자로서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심지어 맹자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임금따위 그냥 필부라 일갈했었다. 신하로써 왕을 몰아내는 것은 마땅히 반역이어야 하지만 왕이 왕같지 않으면 그건 왕이 아니라 그냥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천하는 왕의 소유이지만 천하에 대한 책임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왕이란 개인이 아니며 천하 그 자체다. 왕으로부터 인격을 배제함으로써 개인이 배제된 천하의 소유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천하는 왕의 소유가 아닌 단지 왕이 관리할 뿐이다.


유럽이야 그 전통이 아주 오래되었다. 멀리 그리스와 로마까지 갈 것도 없이 유럽의 중세에서 각 영지는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의 소유였다. 유럽에서 일찌감치 사유재산이나 개인의 배타적 권리를 전제한 계약 등의 제도가 발달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독립된 봉건영주는 부유한 상공인이 되었고, 다시 일반적인 소상공인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들이 시민이었다. 개인은 오롯한 개인의 소유일 뿐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사회계약론이 나오고 근대의 인권과 민권에 대한 개념들이 나타났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부와 권력에 대해 어디까지 그 소유를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왕으로 태어나서 왕인 것인가, 아니면 단지 왕으로서 국가에 대해 국민들이 위임한 책임을 상속하고 있을 뿐인가.


대한민국은 누구의 나라인가. 헌법 제 1조에 아주 친절하게 잘 설명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나라의 주인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대통령은 단지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책임을 위임받은 객체에 불과하다. 누구도 헌법을 넘어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넘어서 권력을 사유화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밀실에서 몇몇 개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일은 감히 있을 수 없다. 하긴 전근대왕조인 조선에서도 그랬다. 아마 조선역사상 왕이 신하와 아무도 없이 독대한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왕의 모든 행사는 공식적으로 사관과 승지의 입회 아래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천하란 공물이며 왕은 단지 그 천하를 다스릴 책임을 위임받은 존재다. 하물며 21세기 대한민국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만일 왕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신하가 그 권한을 넘어서 전횡을 일삼으며 왕의 권위마저 넘보려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역사상 많은 권신들이 스스로 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거나 아니면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역적의 오명을 쓰고 일족과 함께 주살되었던 것이었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으로부터 나라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권한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권한을 마음대로 아무에게나 위임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해해야겠는가. 그런데도 현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왕조시대에 사는 이들이다. 하긴 인터뷰에서도 그러더라. 대통령의 나라라고. 대통령은 왕이라고. 그런 수준이다.


이건 국기문란 정도가 아니라 국기부정이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체제와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아예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자기가 왕이 되던가. 실제 그러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내각제 개헌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신의 후광으로 다수당이 될 여당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권력을 이어가고자 하던 수단이었다. 그런데도 잘못이 없다 말하는 것은 뇌가 없거나, 생각이 없거나, 영혼이 없거나.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그랬다면 사악한 것이다. 대통령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측근들만 일컫는 것도 아니다. 혼자서 그랬겠는가. 아직까지도 대통령의 편에서 야당과 그리고 국민과 싸우려는 이들이 누구인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모든 비판적인 이슈들을 묻어버리는데 앞장선 이들은 누구인가. 지금까지도 그런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다시 묻는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나라인가.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하긴 명나라에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다. 정덕제의 왕진과 천계제의 위충현과 같은. 그래서 명이 망했다. 왕진이나 위충현 같은 놈들이 권력을 쥐고 충신을 죽이며 제 잇속만 채우려 했으니 아무리 세계최대최강의 제국 명이라 해도 견뎌낼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지지한다. 그런 대통령과 그런 정당을. 대한민국도 참 대단한 나라다. 아직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국민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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