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정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보편이고, 다른 하나는 합의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경험을 벗어난 선험의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실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경험할 수 있는 자신과 주위를 벗어나 그를 넘어선 모든 것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추구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 그것은 신이라 불리웠고, 그리고 인간의 지성이 발달하면서 정의라는 이름이 그것을 대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정의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자신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보편적 정의에 부합하는가. 일반적인 가치와 충돌하지는 않는가. 무엇보다 과연 보편이란 무엇인가. 일반이란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보편과 일반의 기준으로 인정할 것인가. 아주 최근까지도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백인 이외의 다른 인종은 같은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라 배웠기에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주위에서 잘했다 칭찬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정의란 인종을 초월한 인간에 대한 존중인가, 아니면 인종에 따른 엄격한 구별과 차별인가.


국가의 법이 존재한다. 사회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윤리와 도덕이 존재한다. 그 이전에 자기들끼리 약속한 자기들만의 법이 있다. 자기들만의 윤리와 도덕이 있다. 외부와 일부러 단절한다. 오로지 내부의 논리로만 사고하고 판단한다. 전근대사회가 그랬다. 아직 보편적인 권력도, 일반적인 공동체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 자기 사는 것은 자기가 책임져야만 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과 판단 또한 자기들끼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었다. 인류보편의 가치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가의 법이나 사회의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관습과 법마저 무시한다. 우리들끼리 옳다 했으니 그것이 옳다.


역시 역사적 맥락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듯하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근대로 접어드는 시기 한반도를 지배한 것은 이방인인 일본인들이었다. 이승만 이래 역대 독재정권에서 권력이란 국민과 유리된 그들만의 어떤 것이었다. 국민의 합의에 의해 법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의 동의에 의해 사회적 가치와 정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보편의 세계란 인식하기도 어렵고 그를 따르기란 더 어렵다. 경험의 세계에 머문다.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보편과 일반의 세계보다 항상 얼굴을 맞대는 직접적인 관계에 의지한다.


하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절대 아니다. 다만 그같은 경향이 유독 강한 것에는 그런 영향도 적지 않다 해야 할 것이다. 상당수 아직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는 소외된 집단에서도 그같은 경향은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보편적인 권력에 대한 인식도 없고, 자신들이 경험하는 세계 이외의 일반적인 세계에 대한 의식도 없다. 자기들끼리만 납득한다. 우리가 옳다면 옳다.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면 틀리지 않았다.


사실 인터넷에도 - 아니 오히려 외적인 권위나 권력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기에 역시 더 강하게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서로에게 묻는다. 맞는가. 옳은가. 서로가 맞다고 옳다고 하면 그것은 맞는 것이고 옳은 것이 된다. 정의가 되고 윤리가 되고 도덕이 된다. 규범이 되고 규준이 된다. 인터넷 문화의 배타성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우리가 옳다고 결론내렸다. 우리가 맞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므로 우리가 옳았고 맞았다.


법이 금지한 행위다. 노예든, 아니면 규정을 벗어난 부정이든. 하지만 자기들끼리 괜찮다. 자기들끼리 문제없다 정의한다. 그러므로 아무렇지 않다. 검찰이 돈을 받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해도 관행이니까. 서로 좋자는 것이니까. 지역사회에서 누가 불법으로 노예를 부려도 서로 괜찮다 합의했으니까. 그러므로 오히려 내부의 논리를 부정하고 그같은 사실을 알리는 자체가 더 큰 잘못이다.


보편의 세계를 복구해야 한다. 인류보편의 가치가 적용되는 보다 넓은 선험적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인류란 나와 너가 아니다. 우리가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모두다. 생명이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일컫는 것이다. 교육부터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너는 너다. 너만 잘되면 된다. 타인과의 비교는 결국 타인과 자신을 유리시킨다. 저들은 나도 우리도 결코 아니다.


돌고 돌아 결국 모두가 이어진다. 오히려 군 내부의 논리에 의해 옹호되는 군비리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전관예우, 그리고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외주회사와 서울메트로간의 유착까지. 여성들이 느끼는 현실의 공포에 대해서도 남성들은 스스로 서로에 묻고 확인하며 자신들의 정당성만을 굳건히 지키려 하고 있었다. 타인이다. 남이다. 상관없는 대상이다. 우리는 우리끼리.


통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섬이다. 북한으로 인해 대륙과의 연결이 막혀 있고, 바다는 일본이 에워싸고 있다.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렇지 않게 국경을 넘어 세계를 경험한다면 그만큼 대한민국이라는 완고한 틀을 벗어나 사고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가 너무 어렵다. 인터넷시대에도 결국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가 동의하는 내용들만을 일부러 찾아본다.


근본의 문제다.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도 처벌되지 않는다. 내부의 논리에 의해 은폐되고 외부집단과의 결탁에 의해 무마된다. 법이 의미가 없다. 보편의 윤리와 도덕이 전혀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술을 먹었으니까. 그때 내게 사정이 있었으니까. 원래 그래오던 것이었으니까. 의지조차 없다. 국가라면 당연히 국가라는 단일한 정체성 아래 공적인 규범이 규준으로써 적용되어야 한다. 소집단에 그저 아부하는데만 열심이다.


우리가 좋으니까. 우리가 옳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그렇게 결정했으므로 성폭행당한 것보다 그것을 세상에 알린 것이 더 큰 문제다. 불법을 저지르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보다 내부의 논리를 배반하고 외부에 그것을 알린 자체가 더 큰 잘못이다. 닫히고 분리된다. 우리는 우리끼리. 오히려 사회가 그들의 눈치를 본다.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봉건사회다. 누구도 보편의 세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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