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장점은 정부가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만능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으로도 역량에 있어서도 불완전하고 미흡하기에 민주주의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이, 사회의 각 부분과 요소들이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다.

대개 권위주의적인 권력일수록 완벽해지려 한다. 당연히 인간이 완벽할 수 없으니 문제가 될 만한 부분들은 철저히 숨겨 누구도 알 수 없도록 만든다. 알려 하면 다치고 알리려 해도 다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군사독재가 민주정부보다 청렴했다 유능했다 착각하는 이유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는 사회가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다. 노예들이라서 그렇다.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하나의 사회에서 함께 공존하는 만큼 다양한 이해와 주장들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내가 옳고 내 이익부터 먼저 챙겨야겠다. 그 과정에서 함께 토론하고 서로 비판하면서 납득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낸다. 완전한 100보다는 50에서 70사이의 어디쯤 있을 것 같은 결론들이 주를 이룬다. 그에 비하면 어떤 비판도 반론도 허락지 않는 권위주의의 결론은 얼마나 명쾌한가.

가끔-아니 거의 대부분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심지어 개혁진보진영-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지만 당장 생각나는 단어가 없어서-에서도 민주시민으로서 전혀 적절하지 않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흔히 발견하게 된다. 차라리 알게 하지 말라. 차라리 드러나게 하지 말라. 차라리 논쟁하게 하지 말라. 처음부터 정부에서 완벽하게 논란의 여지 없는 정책을 펴라. 한 점의 오류도 없는 부작용도 없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건 신의 영역이다.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마저 플라톤은 주장만큼 현실정치에서 썩 훌륭한 결과도 내지 못했다.

문재인만의 정부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문재인 개인이나 그를 따르는 일부의 것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비판도 하고 누군가는 잘못을 지적하며 비난하기도 한다. 단 내가 주인으로서다. 그러므로 내가 주인이므로 내가 주인인 나라를 위해 직접 참여해야겠다. 그마저 허락지 않았던 시대를 조용하고 완전무결했으니 찬양하는 것은 과연 무슨 심리인가.

정당한 비판은 환영이다. 항상은 아니지만 때로 야당이 야당답게 정부의 아픈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옳다 생각한다. 그렇개 시끄럽게 싸우면서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간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항상 그래서 민주정부에서만 시끄럽고 논란도 많다. 잘못도 많고 실수도 많다. 누가 더 우월한가.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아직은 먼  것 같기도 하지만. 원래 인간이란 종자체가 그렇기도 하니.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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